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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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7-11-09 15:52 수정일 : 2017-12-30 19:03

시조 및 본관의 유래(始祖 本貫由來)

경산 김씨(慶山金氏)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여덟째 아들 일선군(一善君) 김 추(金 錘)10세손 김인궤(金仁軌)를 시조(始祖)로 한다.

그는 고려조(高麗朝)에서 대장군(大將軍)을 지낸 김윤성(金允成)의 아들로 출생하여,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문하시중(門下侍中 : 문하성의 종1품 최고벼슬)을 거쳐 조현대부(朝顯大夫)전법총랑(典法摠郞)호군전객령(護軍典客令) 등을 지냈으며, 그의 후손 육화(育和 : 초명은 숙화)가 금자광록대부이부 상서(吏部尙書)좌복야(左僕: 상서도성의 정2품 벼슬)상장군(上將軍) 등을 역임하고 나라에 공()을 세웍 경산군(慶山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관향(貫鄕)을 경산(慶山)으로 삼게 되었다.

그러나 1320(고려 충숙왕 7) 찬성사(贊成事)를 지내고 경산군(慶山君)에 봉해진 김 이(金 怡 : 12651327)를 시조(始祖)로 기록하는 문헌도 있으며,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는 김 한(金 翰)을 시조로 기록하고 있다.

특히 경산 김씨(慶山金氏)는 시조 인궤(仁軌)로부터 계대(系代)가 불분명하여 경산군(慶山君) 육화를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세계(世系)를 잇고 있다

경산(慶山)은 경상북도 중앙부(中央部)에 위치하며, 아득한 옛날에는 압량소국(押梁小國) 또는 압독소국(押督小國)으로 불리웠다가 신라(新羅)에 통합되어 서기 750(신라 경덕왕 9)에 장산(獐山)이라 하였다.

그후 서기 940(고려 태조 23) 장산(章山)으로 개칭되었다가, 1310(충선왕 2) 지금의 지명(地名)으로 바뀌었다..

가문을 빛낸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육화의 아들 중전(仲全)이 고려조에서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 문하부의 정2품 벼슬)를 역임하였고, 그의 아들 경선(敬先)은 예의 판서(禮儀判書 : 예의사의 정3품 으뜸 벼슬)를 지냈으며, 손자(孫子) 영수(英秀)는 평장사(平章事)를 거쳐 문하시랑(門下侍郞 : 고려 때 중서문하성의 종1품 벼슬)에 이르렀다.

한편 영수(英秀)의 아들 익려(益礪)는 삼사 좌윤(三司左尹 : 전곡의 출납과 회계를 맡아보던 관청의 종3품 벼슬)을 지냈으며, 문정공(文貞公) (: 익려의 손자)은 공민왕(恭愍王)이 홍건적(紅巾賊)의 난을 피하여 남행(南行)할 때 중랑장(中郞將)으로 호종하여 일등공신(一等公臣)에 책록되었고, 사신(使臣)으로 일본(日本)을 다녀와 호조 판서(戶曹判書)와 우의정(右議政)을 역

임한 후 경양군(慶陽君)에 봉해져서, 목사(牧使)를 지낸 아들 약수( )와 함께 가문을 빛냈다.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김씨(慶山金氏)는 남한(南韓)에 총 1,135가구, 5,15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

김중전(金仲全) 고려(高麗) 떄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를 역임하였다.

김경선(金敬先) 고려에서 판서(判書)를 역임.

김영수(金英秀) 고려 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평장사(平章事)문하시랑(門下侍郞) 등을 역임하였다.

김익려(金益礪) 고려 때 삼사 좌윤(三司左尹)을 지냈다.

김 지(金 志) 고려(高麗)에서 군기시부정(軍器寺副正)을 역임.

김 용(金 龍) 시호는 문정(文貞). 고려 공민왕(恭愍王)이 홍건적(紅巾賊)의 난을 피하여 남행할 때 중랑장(中郞將)으로 호종하여 일등공신(一等功臣)에 책록되었고, 호조 판서(戶曹判書)우의정(右議政)으로 경양군(慶陽君)에 봉해졌다.

김약수(金 樹) 조선(朝鮮) 때 목사(牧使)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