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교하김씨시조(交河金氏),김맹정(金孟貞),교하김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11-09 17:27 수정일 : 2018-04-11 19:45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신라(新羅) 종실(宗室)의 후예로 나주 김씨(羅州金氏)에서 갈려진 교하 김씨(交河金氏)는 경순왕(敬順王)의 둘째 아들 김 굉(金 鍠)의 8세손 김맹정(金孟貞)이 시조(始祖)이다.

고려(高麗) 때의 장군(將軍)인 그가 서기 1135년(인종 13) 묘청(妙淸)의 난(亂)을 토평(土平)하는데 공(功)을 세워 교하군(交河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일세조(一世祖)로 하고, 교하(交河)를 본관(本貫)으로 삼아 나주 김씨(羅州金氏)에서 분적(分籍하게 되었다.

교하(交河)는 지금의 경기도 파주군(派坡郡)에 속해 있는 고장으로 고구려(高句麗) 시대에는 천정구현(泉井口縣), 굴화(屈火), 또는 어을매관현(於乙買串顯)이라 하였고,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 : 제35대 왕, 재위기간 : 742~765)때 교하(交河)로 개칭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교하 김씨(交河金氏)는 전객령(典客令) 득성(得成)의 아들 전(田)․삼(三)․어도(御道) 3형제의 후대(後代)에서 크게 번성하였는데, 상장군(上將軍)을 지낸 전(田)의 아들 승귀(承貴)가 전공 판서(典工判書)를 지냈고, 삼(三)의 아들 용례(庸禮)는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올랐으며, 어도(御道)의 아들 실로(實老)는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한편 조선(朝鮮) 인조(仁祖 : 제 16대 왕, 재위기간 : 1623~1649)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 중추부의 종2품 벼슬)을 지낸 성구(成九)는 다른 일파의 파조(派祖) 가 되었고, 그의 손자(孫子) 희신(喜臣)이 숙종(肅宗 : 제 19대 왕, 재위기간 : 1675~1720)때 등과하여 현감(顯監)을 지냈다.

그밖의 인물로는 통정대부(通政大夫 ; 정 3 품 당상관의 품계)에 오른 억남(億南)과 충청도 광찰부 주사(忠淸道觀察府主事) 윤구(尹九)가 유명했으며, 전석(廷碩)은 군수(郡守)를 역임하여 가문을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교하김씨는 전국에 1,26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교하김씨조상인물

김맹정(金孟貞) 고려(高麗) 때 장군(將軍)을 역임.

김명인(金明仁) 고려 때의 진사(進士)였다.

김 유(金 侑) 고려때 군기감(軍器監)을 역임하였다.

김 여(金 驪) 고려 때 정용호군(精 勇 護軍)을 역임.

김득성(金得成) 고려조(高麗朝)에 전객령(典客令)을 지냈다.

김 전(金 田) 고려 때 지후(祗候)를 역임.

김어도(金御道) 조선(朝鮮) 때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김승귀(金承貴) 조선 때 전공 판서(典工判書)를 역임.

김용례(金庸禮) 조선조(朝鮮朝)에 원종공신(原從功臣)이 되었다.

김실로(金實老) 조선 때 판관(判官)을 지냈다.

김 진(金 瑨) 조선 때 도사(都使)를 역임.

김 관(金 琯) 조선 때 찰방(察訪)을 역임.

김호서(金豪瑞) 조선에서 도감(都監)을 지냈다.

김신민(金信民) 조선 때 어모장군(御侮將軍)에 이르렀다.

김한필(金漢弼) 조선 때 수위장군(昭威將軍)에 올랐다.

김신필(金信弼) 조선조(朝鮮朝)에 부호군(副護軍)을 역임.

김윤량(金允亮) 조선 때 훈도(訓導)를 지냈다.

김자수(金自修) 조선에서 직장(直長)을 지냈다.

김기문(金起門) 조선에서 어모장군(御侮將軍)에 이르렀다.

김이벽(金履碧) 조선 때 오위장(五衛將)을 역임.

김억남(金億南)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김치룡(金致龍) 조선조에서 부사과(副司果)를 지냈다.

김윤구(金允九) 조선에서 충청도 관찰부 주사(忠淸道觀察府主事)를 지 냈다.

김정석(金廷碩) 조선 때 군수(郡守)를 역임.

김성구(金成九) 조선 때 전적(典 籍)을 지냈다.

김희신(金喜臣) 조선에서 현감(顯監)을 역임하였다.

김석만(金石萬) 한말(韓末)에 도지부 주사(度支府主事)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