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나주김씨(羅州金氏),나주김씨시조,김운발,나주김씨유래,나주김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3-24 20:44 수정일 : 2018-01-31 14:47

나주김씨시조 및 나주김씨유래(본관)

나주김씨(羅州金氏)의 시조(始祖) 김운발(金雲發)은 경순왕(敬順王)의 둘째아들인 김굉(金鍠)의 맏아들이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의 기록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인 굉()은 신라(新羅)가 망하자 가야산(伽倻産) 해인사(海印寺)로 들어가 축발(祝髮)을 하고 법명(法名)을 범공(梵空)으로 하여 불가로 귀의(歸依)하였는데, 그가 입산(入山)하기 전에 고려조(高麗朝)에서 두 아들을 예우(禮遇)하여 장자(長子) 운발(雲發)은 문 하시중(門下侍中)으로 나주군(羅州君)에 봉하고, 차자(次子) 우발(雨發)은 경주군(慶州君)에 봉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운발(雲發)을 시조(始祖)로 하고 나주(羅州)를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면서, 누대에 걸쳐 훌륭한 인 물을 많이 배출하여 명문(名門)의 긍지를 심었다.


나주(羅州)는 전라남도의 중서부(中西部)에 위치한 고장으로 백제(百濟) 시대에 발라(發羅)였고,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 : 35대 왕, 재위기간 : 742 - 765) 때는 금산(錦山)으로 고쳤으며,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본거지로 삼았다가 후에 고려(高 麗) 태조(太祖)가 여기를 점령하고 나주(羅州)로 개칭하였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운발(雲發)의 아들 중륜(重輪)과 인륜(仁輪)이 고려에서 각각 시중(侍中)과 원윤(源尹)에 올랐으며, 증손(曾孫) 원상(源相)은 예의 판서(禮儀判書)를 역임하여 명성을 떨쳤다.

한편 판윤(判尹) 우해(宇海)의 아들 광()은 보문각(寶文閣)의 정2품 벼슬인 대제학(大提學)을 지냈고, 후손 수연(守淵) 은 병부 상서(兵部尙書)를 역임하였다.

서기 1326(충숙왕 13) 문과에 급제한 대경(臺卿)은 벼슬이 대제학(大提學)에 이르 렀으며,문장(文章)이 당세에 뛰어나「동문선(東文選 :신라 때부터 조선 숙종 때까지의 시문을 모은 책)」에 그의 시()가 올랐고, 한때 목은(牧隱) 이 색(李 穡)과 함께 나주(羅州) 안로현(安老縣)에서 유배생활을 겪기도 하였다.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공조참의(工曹參議) ()와 형조 참의(刑曹參議) 경근(敬近)이 유명했으며, 부총제 정준(廷儁)의 현손(玄孫) 경석(景錫)은 중종(中宗) 때 무과에 급제하고, 명종(明宗) 때 호남(湖南) 지방에 왜구가 침입하자 방어사(防禦使)로서 종질(從 姪)인 적()과 함께 이를 격퇴시켰다.

그외 길주 목사(吉州牧使) (), 풍천 부사(豊川府使) 수신(守信), 도총관(都摠管) 충수(忠秀)가 유명했는데, 특히 충수는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책록되고 호조 참판(戶曹參判)에 올랐으며, 정유재란 때는 부인과 함께 장렬하게 순절하여 나라에서 그의 고향인 공주(公州)에 정문(旌門)을 세우게 하였다.

전라관찰사(全羅觀察使) 장송(長松)도 남원 부사(南原府使) 몽동(夢東)․난익(蘭益), 현감(縣監) 희징(禧澄), 원동 이등공신(原從二等功臣) 언호(彦浩)와 함께 명성을 떨쳐 가문을 빛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나주 김씨(羅州金氏)는 남한(南韓)에 총 14,387가구, 51,06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나주김씨조상인물

김운발(金雲發) 고려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냈고, 나주군(羅州君)에 봉해졌다.

김중륜(金重輪) 고려 때 시중 (侍中)을 역임하였다.

김인륜(金仁輪) 고려 때 원윤(元尹)을 역임하였다.

김영희(金英熙) 고려 때 동정(同正)을 지냈다.

김 율(金 律) 고려 때 시중(市中)을 역임하였다.

김원상(金源相) 고려 때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하였다.

김낙도(金樂道) 고려 때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였다.

김시태(金始兌) 고려 때 도총부 부총제(都摠府副摠制)를 역임하였다.

김주해(金宙海) 고려 때 판윤(判尹)을 역임하였다.

김경진(金慶進) 고려 때사공(司空)을 역임하였다.

김우해(金宇海) 고려 때 판윤(判尹)을 역임하였다.

김 광(金 光) 고려 때 보분각 대제학(補文閣大提學)을 역임하였다.

김 형(金 馨) 고려 때 사공(司空)을 역임하였다.

김한주(金漢周) 고려 때 평장사(平章事)를 역 임하였다.

김계황(金季璜) 고려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하고 공주군(公州君)에 봉해졌다.

김춘원(金春元) 고려 때 시중(侍中)을 역임하였다.

김득장(金得章) 고려 때 안노 현감(安老縣監) . 대장군(大將軍) 등을 역임하였다.

김극순(金克淳) 고려 때 대장군(大將軍)을 역임하였다. 김진빈(金進彬) 고려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하였다.

김요선(金堯瑄) 고려 때 검교군기감(檢校 軍器監)을 역임하였다.

김 여(金 呂) 고려 때 대호군(大護軍)을 역임하였다.

김억서(金億瑞) 고려 때 시중(侍中)을 역임하였다.

김수연(金守淵)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여 은청광록대부, 추밀 원부사(樞密院府事), 병부 상서(兵部尙書) 등을역임하였다.

김견수(金堅壽) 고려 때 낭장(郎將)을 역임하였다.

김봉구(金鳳九) 고려 때 시중(侍中)을 역임하였다.

김성고(金成固) 고려 때 중정 대부(中正大夫)에 올라 전의령(典儀令)을 역임하였다.

김만겸(金萬兼) 고려 때 감정(監正)을 역 임하였다.

김대경(金臺卿) 자는 중시(仲始), 호는 월당(月塘). 1326(충숙왕 13) 문과에 급제한 후 보문각 대제학(補文閣大提學)을 지내고 봉익대부(奉翊大夫)에 추증되었다.

김 백(金 白) 고려 때 검교중랑장(檢校中郞將)을 역임하였다.

김가구(金可久)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한 후 봉익대부(奉翊大夫)에 이르렀고, 예의판서(禮儀判書)를 역임하였다.

김 임(金 臨) 조선 때 현령(縣令)을 지내고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이르렀다.

김 재(金 載) 조선 때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김정준(金廷儁) 조선 때 부총제(副摠制)를 역임하였다.

김 양(金 壤) 조선 때 해주목사(海州牧使), 판관(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김 규(金 珪) 조선 때 공조 참의(工曹參議)를 역임하였다.

김경근(金敬近) 조선 때 형조 참의(刑曹 參議)를 역임하였다.

김우운(金祐雲) 조선 때 결성 현감(結城縣監)을 역임하였다.

김이첨(金以瞻) 조선 때 한성소윤(漢城少尹)을 역임하였다.

김취장(金就章) 자는 대화(大和). 조선 때 문과에 급제, 공조 정랑(工曹正郞)을 역임하였다.

김우문(金佑文) 자는 원정(元禎). 조선 때 문학사(文學 司), 승선랑(承宣郞) 등을 역임하였다.

김취형(金就亨) 조선 때 북평사(北平事)를 역임하였다.

김 낙(金 洛) 조선 때 용궁 현감(龍宮縣監)을 역임하였다.

김해준(金海准) 조선 때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 참판(兵曹參判),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 및 오위도총부 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 등을 역임하였다.

김봉서(金鳳瑞) 조선 때 강화 부사(江華府使), 군자감 부정(軍資監副正) 등을 역임하였다.

김시익(金時翼) 조선 때 문과에 급제한 후 영광 군수(靈光郡守)를 역임하였다.

김여준(金麗準) 조선 때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을 역임하였다.

김세빈(金世斌) 조선 때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을 역임하였다.

김경호(金景鎬) 자는 경지(景之). 조선 중종(中宗) 때 무과에 급제하여 어모장군(禦侮將軍), 훈련원정(訓練院正) 등을 역임하였다.

김경석(金景錫) 자는 석지(錫之). 호는 용주(龍州). 중종 때 무과에 급제하여 만포(滿浦) , 강계(江界)의 부사(府使), 첨사(僉使) 등을 지냈다. 1519(중종 14)에 정국(靖國) 일등공신에 책록되었다.

김 조(金 稠) 자는 자실(子實). 조선 때 대사성(大司成)을 역임하였다.

김 세(金 世) 조선 때 문과에 급제한 후, 수원(水原), 성천부사(成川府使), 개성유수(開城留守)등을 역임하고 호성군(扈城君)에 봉해졌 다.

김 구(金 球) 조선 때 오위도총부 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을 역임하였다.

김인명(金仁 命) 조선 때 문과에 급제한 후 좌승지(左承旨)를 역임하였다.

김종신(金宗信) 자는 서실(西實). 조선 때 참판(參判), 의금 부사(義禁府事) 등을 역임하였다.

김상의(金尙義) 자는 중절(仲節). 조선 때 감찰(監察), 태천 현감(泰川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김일남(金鎰南) 자는 규백(圭伯). 조선 때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김감묵(金鑑黙) 조선 때 돈령부 사(敦寧府事)를 역임하였다.

김 진(金 鎭) 자는 진지(鎭之), 호는 매헌(梅軒). 조선 때 훈련판 관(訓練判官), 강계 방어사(江界防禦使), 길주 목사(吉州牧使),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 등을 역임하였다.

김수신(金守信) 초명은 입신(立信), 자는 사부(士孚). 조선 때 충주 목사(忠州牧使), 풍천 부사(豊川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김 과(金 金弋) 자는 여중(汝重), 호는 한송생(寒松生). 진안(鎭安), 영산 현감(靈山縣監) 등을 지내고, 난을평정시킨 공()으로 영국원종일등공신(寧國原從一等功臣)이 되었다.

김 주(金 鑄) 초명은 계급(啓及), 자는 천강(千强). 감정(監正)을 역 임하였다.

김 적(金 適) 자는 희정(希正), 호는 취암(鷲巖). 광주 목사(光州牧使)를 지냈다.

김충수(金忠秀) 자는 중심(中心), 호는 귀암(龜巖). 호조 참판(戶曹參判), 도총관(都摠管)을 역임하였다.

김선준(金善俊) 조선 때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역임하였다.

김지수(金智秀) 조선 때 훈련원 첨정(訓練院僉正)을 역임하였다.

김기선(金起善) 조선 때 찰방(察訪)을 역임하였다. 김남평(金南平) 조선 때 도정(都正)을 역임하였다.

김윤신(金潤身) 조선 때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올랐다.

김무치(金茂致) 조선 때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김장송(金長松) 조선 때 전라 관찰사(全 羅觀察使)를 역임하였다.

김몽동(金夢東) 조선 때 남원 부사(南原府使)를 역임하였다.

김수학(金壽鶴) 조선 때 안변 부사(安邊府使)를 역임하였다.

김기운(金基運) 조선 때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김여택(金汝澤) 조선 때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김복남(金福南) 조선 때 공조 좌랑(工曹 佐郞)을 역임하였다.

김춘남(金椿南) 조선 때 현감(縣監),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김난생(金蘭生) 조선 때 형조 좌랑(刑曹佐郞)을 역임하였다.

김난익(金蘭益) 조선 때 남원부사(南原府使)를 역임하였다.

김희징(金禧澄) 조선 때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김양계(金良桂) 조선 때 의정 (醫正)을 역임하였다.

김언호(金彦浩) 조선 때 원종이등공신(原從二等功臣)을 역임하였다.

김여립(金麗立) 조선 때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김금동(金今銅) 조선 때 호조 좌랑(戶曹佐郞)을 역임하였다.

김숙필(金淑弼) 조선 때 주부(主簿)를 역임하였다.

김성률(金聲律) 조선 때 어모장 군(禦侮將軍)에 올랐다.

김효동(金孝東) 조선 때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김의선(金義善) 조선 때 장악원정(掌樂院正)을 역임하였다.

김 발(金 渤) 조선 때 부사(府使), 오위장(五衛將) 등을 역임하였다.

김광신(金光申) 조선 때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김선철(金善喆) 조선 때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김규면(金圭冕) 조선 때 공조 참의(工曹參議)를 역임하였다.

김길운(金吉運) 조선 때 군자감(軍資監)을 역임하였다.

김승중(金承重) 조선 때 공조 참의(工曹參議)를 역임하였다.

김시보(金時輔) 조선 때 주부(主簿)를 역임하였다.

김윤태(金倫泰) 조선 때 부총관(副摠管)을 역임하였다.

김구하(金九夏) 조선 때 우승지(右承旨)를 역임하였다.

김영서(金永瑞) 조선 때 부총관(副摠管)을 역임하였다.

김태복(金泰福) 조선 때 찰방(察訪)을 역임하였다.

김윤서(金允瑞) 조선 때 호조 참의(戶曹參議)를 역임하였다.

김시석(金時奭) 조선 때 군자감(軍資監)을 역임하였다.

김 성(金 珹) 조선 때 호조 참의(戶曹參議)를 역임하였다.

김구점(金九漸) 조선 때 참판(參判)을 지냈다.

김 갱(金 鏗) 조선 때 군자감(軍資監)을 역임하였다.

김수채(金遂采) 조선 때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김희택(金熙澤) 조선 때 의금부사(義禁府事)를 역임하였다.

김이봉(金履鳳) 조선 때 시정(寺正)을 역임하였다.

김한일(金漢一) 조선 때 부총관(副摠管)을 역임하였다.

김성채(金聖采) 조선 때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김세빈(金世彬)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김인태(金仁泰) 조선 때 무과에 급제하여 장군(將軍)을 역임하였다.

김우림(金愚林) 조선 때 무과에 급제, 장군(將軍)을 역임하였다.

김용변(金龍釆) 조선 때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김진원(金鎭元) 조선 때 좌승지(左承旨)를 역임하였다.

김경일(金敬溢) 조선 때 부총관(副摠管)을 역임하였다.

김상진(金相璡) 조선 때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김용해(金龍海) 조선 때 우승 지(右承旨)를 역임하였다.

김대해(金大海) 조선 때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김상귀(金相龜) 조 선 때 시정(寺正)을 역임하였다.

김구정(金九鼎) 조선 때사과(司果)를 역임하였다.

김용복(金用福) 조선 때 부총관(副摠管)을 역임하였다.

김재해(金在海) 조선 때 호조 참의(戶曹參議)를 역임 하였다.

김기보(金基普) 조선 때 도정(都正)을 역임하였다.

김인현(金寅炫) 조선 때 좌승지(左承旨)를 역임하였다.

김합현(金合炫) 조선 때 참의(參議)를 역임하였다.

김상진(金象鎭) 조선 때 참의(參議)를 역임하였다.

김순해(金巡海) 조선 때 시정(寺正)을 역임하였다.

김상보(金相甫)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김주현(金柱炫)조선 때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역임하였 다.

김옥해(金玉海) 조선 때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김박환(金璞煥) 조선 때 감찰(監察)을 역임하였다.

김여해(金麗海) 조선 때 감찰(監察)을 역임하였다.

김종해(金宗海) 조선 때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김용해(金龍海) 조선 때 감정(監正) 역임하였다.

김학수(金學洙) 조선 때 좌승지 (左承旨)를 역임하였다.

김필해(金弼海) 조선 때 우승지(右承旨)를 역임하였다.

김능해(金能海) 조선조(朝鮮朝)에 감찰(監察)을 역임했다.

김기환(金麒煥) 조선 때 도정(都正)을 역임하였다.

김인환(金麟煥) 조선 때 감찰(監察)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