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당악김씨시조(唐岳金氏),김낙(金樂),당악김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3-24 21:09 수정일 : 2018-03-10 19:49

시조 및 본관의 유래

당악김씨시조(唐岳金氏 始祖) 김낙(金樂)은 신라 문성왕(文聖王 : 제46대왕, 재위기간 : 839~857)의 5세손이며, 신라에서 대아찬(大阿湌 : 신라 17관등 중 다섯째 벼슬)을 지낸 김무력(金武力)의 맏아들이다.

그는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개국(高麗開國)에 공(功)을 세워 개국통합삼한일등공신(開國統合三韓一等功臣)으로 당악군(唐岳君)에 봉해졌으며, 원보(元甫) 겸 대장군(大將軍)에 올라 서기 927년(고려 태조 10) 7월 대량성(大良城 : 지금의 합천)을 치고, 그해 10월 공산(公山 : 대구의 팔공산)의 동수(桐藪) 전투에서 견훤(甄萱 : 후백제의 시조)과 싸우다가 태조(太祖)가 포위되어 위급하게 되자 대장(大將) 신숭겸(申崇謙 : 평산 신씨의 시조)과 함께 태조를 덤불 속에 숨기고 왕(王)의 수레를 대신 타고 격전하다가 전사했다.

그후 태조는 그의 충절을 기려 익대교절광위갈충위사전공신(翊戴交節匡偉竭忠衛社戰功臣)에 추봉하고 지묘사(智妙寺)를 세워 그의 명복을 빌었으며, 후손들에게 당악군(唐岳郡)을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했으므로 후손들이 사적(賜籍)된 당악(唐岳)을 관향(貫鄕)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게 되었다.

당악(唐岳)은 평안남도 중화군(中和郡)의 옛 지명으로 고구려(高句麗) 때 가화압(加火押)으로 불렀고, 신라(新羅) 헌덕왕(憲德王 : 제41대 왕, 재위기간 : 809~826) 때는 당악현(唐岳縣)으로 개칭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시조 낙(樂)의 아들 승(陞)이 아버지의 절사(節死)로 원윤(元尹)에 특배(特拜)되고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에 올랐으며, 그의 손자 자경(自敬)은 문하평리(門下評理)를 지냈다.

조선조(朝鮮朝)에서는 부령(副令) 손휘(孫暉)의 손자(孫子) 오복(五福)이 세종(世宗) 때 연안부 교수관(延安府敎授官)을 지내고 사재부정(司宰副正)에 올랐으며, 아우 오기(五奇)는 장령(掌令)을 역임했다.

그외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중시(仲時)와 부호군(副護軍) 경엽(敬燁), 부사직(副司直) 사민(泗敏) 등이 이름났으며, 상권(尙權)과 태흥(泰興)도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여 가문을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당악김씨는 전국에 5,40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 - 당악김씨조상인물 

김 승(金 陞) 고려 때 좌복야(左僕射)를 역임했다.

김 간(金 澗) 고려 때 정용장군(精勇將軍)에 이르렀다.

김유지(金有之) 고려 때 원윤(元尹)을 역임했다.

김 진(金 珍) 고려 때 보윤(甫尹)을 역임했다.

김 용(金 用) 고려 때 보윤(甫尹)을 역임했다.

김원준(金爰準) 고려 때 검교정승(檢校政丞)을 역임했다.

김 정(金 正) 고려 때 판이부사(判吏部事)를 역임했다.

김태보(金台輔) 고려 때 대장군(大將軍)을 역임했다.

김태현(金台鉉) 고려 때 검교정승(檢校政丞)을 역임했다.

김원계(金元桂) 고려 때 판도특랑(版圖特郞)을 역임했다.

김손휘(金孫暉) 고려 때 부령(副令)을 역임했다.

김손귀(金孫貴) 고려 때 별장(別將)을 역임했다.

김 모(金 牟) 고려 때 종사랑(從仕郞)에 올랐다.

김오복(金五福) 조선 때 사재부정(司宰副正)을 역임했다.

김중시(金仲時) 조선 때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역임했다.

김경절(金敬節) 조선 때 통사랑(通仕郞)에 올랐다.

김천봉(金天鳳) 조선 때 통사랑(通仕郞)에 이르렀다.

김충보(金忠輔) 조선 때 예조참의(禮曹參議)를 역임했다.

김광철(金光哲)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김치정(金致廷)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김민위(金敏胃)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김광로(金光魯)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김의인(金義仁)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김경엽(金敬燁)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했다.

김효성(金孝誠) 조선 때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올랐다.

김석리(金碩利) 조선 때 호군(護軍)을 지냈다.

김석려(金碩麗)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김석만(金碩萬)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김덕리(金德履)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김윤택(金允宅) 조선 때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김사민(金泗敏) 조선 때 부사직(副司直)을 역임했다.

김중옥(金重玉) 조선 때 부사정(副司正)을 역임했다.

김중진(金重振) 조선 때 조봉대부(朝奉大夫)에 올랐다.

김중옹(金重滃) 조선(朝鮮) 때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김준극(金俊極) 조선 때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김태극(金泰極) 조선 때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김경화(金慶華) 조선 때 주부(主簿)를 역임했다.

김광화(金光華) 조선 때 부사정(副司正)을 역임했다.

김춘발(金春發)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김춘성(金春盛)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김군섭(金君燮) 조선(朝鮮) 때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랐다.

김광언(金光彦)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김윤억(金允億)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김석모(金錫模)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김태형(金兌亨) 조선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김태빈(金兌彬)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김해빈(金海斌)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김세걸(金世傑) 조선(朝鮮)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김해엽(金海燁) 조선 때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김강복(金江福)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김상권(金尙權)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했다.

김성각(金成珏)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김봉흥(金奉興)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했다.

김원징(金元澄) 조선(朝鮮)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김태해(金兌海) 조선(朝鮮)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김봉철(金奉哲)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김지함(金志咸)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김휘태(金輝泰) 조선 때 숭록대부(崇祿大夫)에 이르렀다.

김재익(金在益) 조선 때 보공장군(保功將軍)에 올랐다.

김백련(金百鍊) 조선 때 소위장군(昭威將軍)에 이르렀다.

김도련(金道鍊) 조선에서 궁내부 주사(宮內府主事)를 지냈다.

김일용(金鎰鎔) 조선 때 현감(縣監)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