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수안김씨시조(遂安金氏),김선(金愃)

작성일 : 2017-03-27 14:33 수정일 : 2018-03-10 16:59

수안김씨의 연원(遂安金氏의 淵源)

수안김씨의 선대(先代)는 신라 석탈해왕 9년(서기 65년) 3월 경주의 시림(始林:현재의 鷄林)에서 탄강(誕降)한 대보공(大輔公:金間智)을 비조(鼻祖)로 하여 , 신라 17대 내물왕(奈勿王:재위356-402). 22대 지증왕(智證王: 재 위 500-514) . 38대 원성왕(元聖王: 재위 785-798) , 45 대 신무왕(神武王 839-839), 46대 문성왕(文聖王: 재위 839-857). 56대 경순왕(敬順王: 재위927-935)을 포함하여, 신라 역사를 빛낸 스물 여덟 조상이 수안 김씨의 직계조상이며, 내물왕은 대보공의 8세손이고, 지증왕은 11세손, 원성왕은 19세손, 신무왕은 22세손, 문성왕은 23세손, 경순왕은 28세손이다.

고려초의 보국 대안군(輔國大安君:殷設)은 경순왕의 넷째 아들이고, 공부시랑 평장사(工部侍郞平章事) 김숙승(金叔承)은 보국대안군의 셋째 아들로서 비조인 대보공의 30세손이다. 이어서 상락군(上洛君) 김이청(金利請), 예부시랑(禮部侍郞) 김의화(金義和), 상서(尙書) 김민성(金 敏成), 병부상서 한림학사(兵部尙書 翰林學士) 김효인(金孝印) 정동도원수(征東都元帥)와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한 상락군 충렬공(上洛君 忠烈公) 김방경(金方慶)에 이르기까지 명문(名門)의 면모를 이어왔다.

수안 김씨의 관조(貫祖)인 김선(愃) 공은 상락군 충렬공의 장자로서 원충단력안사보정공신 봉익대부지밀직사사 전법판서 상장군(元忠端力安社保定功臣 奉翊大夫知密直 司事典法判書 上將軍)의 위에 올랐고 수안군(遂安君)에 훈봉(勳封)되었다. 관조(貫祖) 수안군(遂安君)은 비조(鼻祖)인 대보공의 37세손이고, 경순왕의 10세손이며. 배위 (配位)는 순창군무인(淳昌郡夫人) 순창설씨(淳昌薛氏)이다.

2세조 김 자(金 資)공은 전리공신 봉익대부 삼중대광 제조도 첨의사사(典理功臣 奉翊大夫 三重大匡 提調都 僉議司事)를 역임하였고. 3세조 김 위(金 爲)는 전리판서 금자 광록대부(典理判書 金紫光祿大夫)에 올랐으며, 4세조 김득남(金得男)도 전리판서(典理判書)를 역임하였다.

5세조 김 이(金 履)도 예조판서(禮曹判書)의 직에 올랐으나. 정포은(鄭同隱)등과 합심 고려 사직 (社稷)을 수호 하려다 파직 유배(流配)되는 등 고려말의 혼란기에 수 많은 사람들이 화를 입었다.

혼란이 수습되고 조선이 개국하자. 남은 사람들이 중부내륙 (中部內陸)을 지나 영남(嶺南)의 북동부 일대에 은거하여, 절제된 생활 속에 학문 연구와 인격 수양에 주력하게 된다.

불의와 타협하기보다 청빈(淸貧)을 선택한 이들의 신념과 긍지는 문중(門中)의 위축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늘날 강 직하고 절제된 생활을 긍지로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것 역시 조상들의 이와 같은 삶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수안김씨는 전국에 5,540명이 살고 있는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