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영천김씨(永川金氏)평산파,김영장(金永長),영천김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3-28 16:26 수정일 : 2020-04-06 14:41

시조 및 본관의 유래(始祖 本貫由來)

영천김씨(永川金氏)는 관향(貫鄕)이 같으면서도 시조(始祖)를 달리하는 네 계통(系統)이 있으나 상계(上系)를 고증(考證)할 문헌(文獻)이 전(傳)하지 않아 소목(昭穆)을 밝힐 수 없고, 그 중 김영장(金永長)을시조로 하는 평산파(平山派)를 상고(詳考)한다.

시조(始祖) 김영장(金永長)은 조선조(朝鮮朝)에서 한성부 서윤(漢城府庶尹)을 지내고 1504년(연산군 10)에 일어난 갑자사화(甲子士禍)로 세상이 혼란해 지자 벼슬을버리고 영천(永川)으로 떠나 황해도(黃海道) 평산군(平山郡) 보산면(寶山面) 두무리(斗武里)에 은거(隱居)하였다.

영천(永川)은 경상북도(慶尙北道) 남동부(南東部)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고대(古代) 골벌국(骨伐國)이었던 것을 신라초기(新羅初期)에 절야화군(切也火郡)으로 고쳐다가 경덕왕(景德王 : 제35대 왕, 재위기간 : 742~765) 때 임고(臨皐)로 하였다.

고려초(高麗初)에 도동(道同)과 임천(臨川) 2현(縣)을 합하여 영주(永州)로 개칭하였으며 서기 995년(성종 14) 자사(刺史)를 두었다가 조선(朝鮮) 태종(太宗) 때 와서 영천군(永川郡)으로 개칭하고, 1937년 읍(邑)으로 승격, 이어 1981년 7월 시(市)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家門)을 빛낸 인물(人物)로는 군자감판관(軍資監判官)을 지낸 경업(敬業:통정대부 명동의 아들)과 승업(承業) 형제가 유명했고, 명승(溟昇)의 아들 태업(泰業)은 군수(郡守)를 역임하여 가문을 대표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영천 김씨(永川金氏)는 남한(南韓)에 총 2,785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영천김씨조상인물

김구현(金九鉉) 일명(一名) 귀현(貴賢). 조선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김덕손(金德孫) 조선조(朝鮮朝)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올랐다.

김충국(金忠國) 조선조(朝鮮朝)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김명동(金溟動) 조선(朝鮮)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김경업(金敬業) 자(字)는 계건(繼建). 조선 때 군자감 판감(軍資監判官)을 지냈다.

김인업(金寅業) 자(字)는 현후(賢厚). 조선조(朝鮮朝)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승업(金承業) 자(字)는 계후(繼厚). 조선 때 군자감 판감(軍資監判官)을 지냈다.

김정록(金鼎祿) 자(字)는 군서(君瑞). 조선 때 좌승지(左承旨)에 추증(追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