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안동노씨시조(安東盧氏),노만(盧鏋),안동노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4-03 15:41 수정일 : 2018-03-26 15:34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안동(安東)은 경상북도(慶尙北道) 북동부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고대(古代)의 창녕국(昌寧國)이었고, 신라시대(新羅時代)에 고타야군(古陀耶郡)․고창군(古昌郡)으로 불리우다가 고려(高麗) 태조(太祖)가 후백제(後百濟) 견 훤(甄 萱)과 싸워 전공을 세우자 안동부(安東府)로 승격되었다.

그후 영가군(永嘉郡) 또는 복주(福州)로 개칭되었다가 1361년(공민왕 10)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로 승격되었고, 여러 변천을 거쳐 1914년 안동․예안(禮安)을 통합하여 안동군이라 하였다.

안동노씨(安東盧氏)는 도시조(都始祖) 노수(盧 穗)의 다섯째 아들 노만(盧鏋)이 고려조(高麗朝)에 출사하여 안동백(安東伯)에 봉해졌고, 후손(後孫) 우(祐)는 고려 때 이부 상서(吏部尙書)를 거쳐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한 후 안동(安東)에 세거(世居) 하였으므로 후손들이 우(祐)를 일세조(一世祖)로 하고 관향(貫鄕)을 안동(安東)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계승하여 왔다.


대표적인 인물

안동 노씨는 일세조 우(祐)의 손자(孫子) 영길(永吉)이 고려에서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내고 나라에 공(功)을 세워 안동부원군(安東府院君)에 봉해졌으며, 그의 아들 숭(崇)은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역임하고 슬하에 아들 4형제를 두었는데 맏아들 원성(元成)은 도원수(都元帥)를, 세째 원신(元信)은 감무(監務)를, 막내 원명(元明)은 사재감정(司宰監正)과 전서(典書)를 역임하여 가문(家門)을 크게 중흥시켰다.

한편 원명(元明)의 맏아들 담(淡)이 조선조(朝鮮朝)에서 의금부(義禁府)의 으뜸벼슬인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를 역임했고 그의 아들 윤적(允迪)은 판서(判書)를, 손자 경(冏)과 수(秀)는 참판(參判)을 역임하여 가문을 일으켰으며, 원명의 둘째 아들 징(澄)은 판사평부사(判司平府事)를, 세째 아들 결(潔)은 도사(都事), 막내 담(湛)은 대언(代言)을 각각 지냈다.

그외 담(湛)의 아들 윤정(允正)이 형조 참의(刑曹參議)를 역임하고 손자 인석(仁錫)은 현감(縣監)을 지냈으며,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윤필(允弼)의 아들 우현(祐

賢)은 현감(縣監)을 역임하여 이조 참판(吏曹參判) 몽재(夢宰), 목사(牧使) 세영(世英), 한림학사(翰林學士) 덕린(德麟), 보호군(副護軍) 승주(承柱)와 함께 안동 노씨의 가통(家統)을 지켰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안동 노씨(安東盧氏)는 남한(南韓)에 3,28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歷代人物)-안동노씨조상인물

노매(盧 瑁) 고려(高麗) 때 전리 판서(典理判書)를 역임하였다.

노순(盧 珣) 호(號)는 용암(龍巖). 고려 때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냈다.

노영길(盧永吉) 호는 지재(地載). 고려에서 금리 판서(禁理判書)를 역임하였다.

노숭(盧 崇) 호(號)는 소재(昭載). 고려(高麗) 때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냈다.

노원성(盧元成) 고려조(高麗朝)에 도원수(都元帥)를 역임하였다.

노원민(盧元敏) 고려조(高麗朝)에 재신(宰臣)을 지냈다.

노원신(盧元信) 고려(高麗)에서 감무(監務)를 역임하였다.

노원명(盧元明) 고려(高麗) 때 사재감정(司宰監正)을 지냈다.

노담(盧 淡) 조선(朝鮮) 때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를 역임하였다.

노징(盧 澄) 조선조(朝鮮朝)에 판사평부사(判司平府事)를 지냈다.

노결(盧 潔) 조선에서 도사(都事)를 역임하였다.

노담(盧 湛) 조선 때 대언(代言)을 지냈다.

노윤적(盧允迪) 자(字)는 일장(一長), 호(號)는 상재(桑齋). 조선(朝鮮) 때 판서(判書)를 역임하였다.

노중리(盧重理) 호(號)는 송재(松齋). 조선(朝鮮)에서 이조 참판(吏曹參判)을 역임했다.

노윤필(盧允弼) 조선조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냈다.

노윤정(盧允正) 조선(朝鮮) 때 형조 참의(刑曹參議)을 역임하였다.

노윤신(盧允信) 조선(朝鮮) 때 참판(參判)을지냈다.

노경(盧 冏) 조선조(朝鮮朝)에 참판(參判)을 역임하였다.

노수(盧 秀) 조선(朝鮮)에서 참판(參判)을 지냈다.

노익(盧 翊) 조선(朝鮮) 때 군수(郡守)를지냈다.

노우현(盧祐賢) 조선 때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노인석(盧仁錫) 조선조(朝鮮朝)에 현감(縣監)을 지냈다.

노숭재(盧崇宰) 조선(朝鮮)에서 참봉(參奉)을 역임하였다.

노몽재(盧夢宰) 조선(朝鮮)에서 이조 참판 (吏曹參判)을 역임하였다.

노석재(盧碩宰) 조선(朝鮮) 때 직장(直長)을지냈다.

노세영(盧世英) 조선(朝鮮) 때 목사(牧使)를 지냈다.

노덕린(盧德麟) 조선조(朝鮮朝)에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역임하였다.

노여실(盧汝實) 조선조(朝鮮朝)에 사과(司果)를 지냈다.

노승주(盧承柱) 조선(朝鮮)에서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노봉수(盧鳳壽) 자(字)는 경관(敬寬). 조선 때 의관(議官)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