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함평모씨시조(咸平牟氏),모경(牟慶),함평모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4-08 21:49 수정일 : 2018-02-17 23:07

함평모씨(咸平牟氏)의 연원

上古의 파류는 증거가 없어 역대의 諱啣은 전하는 것이 없다. 周代有牟國在山東萊蕪以東 相傳是祝融後裔的封國 國人後來以國名作爲姓氏 周나라 때 山東省 萊蕪市(현재 烟臺 西쪽 400km지점에 있음) 동쪽에 牟나라가 있었는데 전하는 바에 의하면 祝融의 후손들이 세운 나라라고 한다. 그 나라 사람들이 후에 나라 이름을 따서 姓氏를 지었다. 牟氏는 본래 중국관서 大宋에 계출되었다고 하며 古代 祝融의 후예가 고을 이름을 姓으로 삼은 것이 始源을 이룬 것으로 전한다.


시 조

함평모씨시조는 모경(慶)이며 諡號는 忠正이다. 중국 대송관서홍농인으로 그는 宋나라 欽宗 때 병부상서兼북경서 宣撫使를 거쳐 吏部상서를 지내고 대사마대장군에 이르렀다. 고려 1126년(인종4년) 고려에 사신으로 왔다. 당시 戚臣 이자겸이 반역을 꾀하고 왕위찬탈 음모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 음모를 저지하고 왕권을 바로 잡는데 한 몫을 해 고려에 공훈을 세웠다. 그 후 본국인 宋나라로 귀국하여 弘農侯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금나라(女眞)가 송나라를 침입하여 徽宗과 欽宗 두 황제를 납치해가자 牟慶은 고려와 힘을 합쳐 두 황제를 구하려고 고려에 도움을 청했으나 고려에서는 이에 응하지 않았고 이 때 송나라가 敗亡하여 귀국길이 막히자 고려에 귀화하여 그대로 고려에 머물으게 되었다.

고려조정에서는 이자겸의 난을 평정한 공훈으로 一等功臣인 推忠奮義翊戴佐命功臣에 책록하고 平章事의 벼슬을 내리고 牟平(咸平)君에 封하였다. 牟慶은 우리나라 牟氏의 터를 닦게 되고 始祖가 되었다. 公은 天資雄傑하고 神勇이 俊秀하여 지모를 겸비하였다.

함평모씨는 이 땅에 뿌리내린지 약 9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2만에 가까운 후손들은 함평을 근거지로 하여 전국 각지에 散居하고 있으며 안으로는 崇祖敦族과 族誼宣揚을 도모하고 밖으로는 국가와 사회에 공헌하는 공존공영의 생활 속에 和合을 다지면서 번성하여온 名門閥族이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에 20,54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함평모씨조상인물

고려시대(高麗時代)

모광정(牟光炡)자(字):광현(光炫) 1154년 文科급제 밀직부사 평장사를 역임

모정린(牟挺麟)자(字):천로(天露) 1182년 문과급제하여 三重大匡보국광록대부 문하시중

모원기(牟元機)자(字):경승(景勝) 1215년 성균진사 급제 문과급제전서 평장사에 이르렀다.

모진로(牟震老)자(字):도유(道儒) 典書侍中에 이르렀다.

모여장(牟汝長)자(字):내윤 1274년 문과급제 大阿餐平章事에 이르렀다.

모호(牟皓)자(字):서숙(瑞淑)호(號):충모재(忠慕齋)시호(諡號):충무(忠武) 1286년 문과급제 三重大匡문화시중 三軍도총제부원수 평장사 元兵이 고려를 침공 黃平을 함락하자 공은 3만 병력을 이끌고 평양에 입성, 원병을 대파하니 조정에서는 공훈을 인정,송경 경복궁문 종에 諱字와 공훈을 세겼다.

모시영(牟時靈)자(字):정자(正資) 1335년 典書와 평장사를 역임했다.

조선시대(朝鮮時代)

모순(牟 恂) 자(字):순지(恂之) 호(號):절강(截江) 포은 정몽주선생 문인, 약관에 司馬試, 1417년 문과급제 문하주서 검상사인에 승배. 좌사간 역임, 조정으로부터 孝子褒賞을 받고 1536년(중종31) 특명으로 진주반성에 旌閭를 세우고 공을 덕천사에 배향하고 있다.

모수천(牟秀阡) 자(字):문옥(文玉) 호(號):지정재(止靜齋) 1423년 성균진사에 급제, 첨정이 되었다.

모익천(牟익阡)자(字):중옥(仲玉)호(號):월탄(月灘)문과급제 좌찬성을지냈다.

모 헌(牟 憲)자(字):진정(晉禎)호(號):해은(海隱)만호이조참판을 역임하시다.

모연일(牟連逸)자(字):자민(字民) 한성좌윤 오위도총부부총관 용양위 부사직을 역임

모세무(牟世茂)자(字):군성(君盛)호(號):송계(松溪) 1675년 문과급제, 승문원교험박사. 통훈대부 유고찰방

모세번(牟世蕃)자(字):군식호(號):죽계(竹溪) 1669년문과급제,성균관전적,흥양현감,제주모교수

모유추(牟有秋) 자(字):영숙 호(號):금석당(金石堂) 1662무과급제, 문무겸전하여 상무괴천하고 하욱인하며 명만조정하고 위진북경하였다. 행통훈대부 양전현감, 영당에 영정을 모시고 截江祠에 배향하고 있다.

모일성(牟一成)호(號):석옹루 1707년 무과급제 행부장통훈 언양현감,강원도병마절제를 역임하고 의동정사에 영정을 모시고 있다.

모경도(牟景都)자(字):사문(士文) 정조조에 무과급제, 宣略將軍 宣傳官을 지내시다.

모동식(牟東植)자(字):종식(종식) 절충장군 행용양위 부호군을 역임하셨다.

모달겸(牟達兼)호(號):중심당1789년 문과급제, 경양찰방 성균관전적,예조좌랑,사헌부장령,통예원좌통예,대정현감을 역임하였다.

근대(近代) 인물(人物)

모동기(牟東基) (1890-1953)자(字):양춘(洋春)호(號):연암(煙庵) 己未 3.1운동 문장만세사건 참가로 일본헌병에 피포되어 중형으로 옥고생활, 관민합동으로 함평공원에 기념비 건립.

모종명(牟鍾明) (1893-1955) 자(字):재명(才明)호(號):취송(翠松) 己未 3.1운동 문장만세 선두참가로 일정병첩소 습격으로 일본헌병에 피포되어 중형옥고 ,함평공원에 관민합동으로 기념비건립

모관순(牟官順) (女) 14幼年에 출가하여 20芳年에 寡身으로 改嫁불언하고 근검절약으로 모은 재산으로 이웃을 돕고 宗中에 희사하여 爲先과 봉사를 겸비하니 이웃과 종친들이 그의 행적을 전하기 위하여 截江齋 境內에 表石을 세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