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창원박씨시조(昌原朴氏),박영(朴齡),창원박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4-13 13:14 수정일 : 2018-03-03 16:15

시 조

창원박씨(昌原朴氏)는 신라(新羅) 경명왕(景明王 : 제54대 왕, 재위기간 : 917~924)의 세자(世子) 밀성대군(密成大君) 언침(彦忱 : 밀양 박씨 시조)의 17세손인 박영(朴齡)을 시조(始祖)로 한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그는 감문위 대호군(監門衛大護軍)과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한 유화(有華)의 증손으로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 창원 도호부사(昌原都護府使)를 지내고 나라에 공(功)을 세워 창원군(昌原君)에 봉해짐으로서 후손들이 밀양 박씨(密陽朴氏)에서 분적(分籍)하여 그를 일세조(一世祖)로 받들고 창원(昌原)을 관향(貫鄕)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본관의 유래

창원(昌原)은 경상남도(慶尙南道) 남쪽에 위치한 산업도시이며 도청소재지로 고대(古代) 금관가야(金官伽倻 : 경상남도 김해지방에 부족국가를 형성하였던 6가야 중의 하나)에 속했었다. 본래 의창현(義昌縣)과 회원현(會原縣)의 합명인데 의창현은 신라의 굴자군(屈自郡)을 경덕왕(景德王)이 의안(義安)으로 고치고, 회원현은 신라의 골포현(骨浦縣)을 경덕왕이 합포(合浦)로 고쳐서 의안군(義安郡)에 속하게 하였다가 1018년(현종 9)의 의한․합포를 모두 금주(金州)에 예속시켰다.

그 후 의안은 의창(義昌)으로, 합포는 회원(會原)으로 고쳐서 모두 현령(縣令)으로 승격하였고, 1413년(태종 13)에는 의창현과 합포현을 합쳐 창원부(昌原府)가 되었으며 1895년(고종 32)에 창원군이 되었다. 1973년 정부의 중화학공업 시책에 따라 창원군의 상남면과 웅남면, 창원면의 일부를 마산시(馬山市)에 편입시키고 1980년에는 창원시가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家門)을 빛낸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시조 영의 아들 손(蓀)이 부사(府使)를 역임했고,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진사(進士) 동지(東智)의 아들 3형제 중 맏아들 유원(由元)이 참의(參議)를, 둘째 유정(由貞)은 참판(參判)을 지냈으며, 막내 유창(由昌)은 승지(承旨)에 이르러 이들이 창원 박씨의 3대산맥(三代山脈)을 이루었다.

유원의 아들 태수(泰首)와 유창(由昌)의 아들 태계(泰桂)는 판관(判官)을 지냈으며, 언석(彦碩 : 태수의 아들)은 대사헌(大司憲)에 올라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한 유엽(有燁)․숭엽(崇燁)과 함께 명성을 떨쳤다.

그밖의 인물로는 부제학(副提學)을 지낸 경(璟)과 부사(府使) 이장(而章)이 유명했고 참찬관(參贊官) 상신(尙臣)은 부총관(副總管)을 역임한 성은(聖殷)․상희(尙希), 대사간(大司諫) 사문(師文)과 더불어 가무(家門)의 전통(傳統)을 이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창원 박씨(昌原朴氏)는 남한(南韓)에 8,38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창원박씨조상인물

박손(朴 蓀) 자(字)는 형문(亨文), 호(號)는 태허당(太虛堂). 조선(朝鮮) 때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박유원(朴由元) 자는 원서(元瑞), 호는 방유정(放遊亭). 조선에서 참의(參議)를 지냈다.

박유정(朴由貞) 자는 윤서(允瑞). 조선(朝鮮) 때 참판(參判)을 지냈다.

박태수(朴泰首) 조선조(朝鮮朝)에 판관(判官)을 지냈다.

박태식(朴泰植) 자(字)는 영수(永秀). 조선 때 참판(參判)을 역임하였다.

박언석(朴彦碩) 자(字)는 유신(有臣). 조선 때 대사헌(大司憲)을 역임하였다.

박세영(朴世榮) 자(字)는 의신(義臣). 조선조에 참의(參議)를 지냈다.

박세인(朴世仁) 자(字)는 경신(景臣), 호(號)는 경재(警齋). 조선조(朝鮮朝)에 참의(參議)를 역임하였다.

박홍세(朴弘世) 자는 여회(汝恢), 호는 남정(南汀). 조선 때 참봉(參奉)을 지냈다.

박유창(朴由昌) 자(字)는 성경(盛卿). 조선(朝鮮) 때 좌승지(左承旨)를 역임하였다.

박유엽(朴有燁) 자(字)는 희질(希質). 조선 때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박숭엽(朴崇燁) 자는 원질(元質). 조선에서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박순(朴 恂) 자(字)는 자신(子信). 조선조(朝鮮朝)에 만호(萬戶)를 지냈다.

박홍기(朴弘器) 자는 여중(汝重). 조선 때 만호(萬戶)를 역임하였다.

박경(朴 璟) 자(字)는 형질(亨質). 조선 때 부제학(副提學)을 지냈다.

박태수(朴鮐壽) 자(字)는 남로(南老), 호(號)는 추산(秋山). 조선조(朝鮮朝)에 첨정(僉正)을 역임하였다.

박응달(朴應達) 자(字)는 성달(成達). 조선 때 참판(參判)을 지냈다.

박두익(朴斗翼) 자(字)는 군경(君敬). 조선에서 장령(掌令)을 지냈다.

박세욱(朴世旭) 자는 이순(而順). 조선(朝鮮) 때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했다.

박이명(朴而明) 자(字)는 찬지(燦之). 조선 때 참의(參議)를 역임하였다.

박이장(朴而章) 자(字)는 장보(章甫). 조선조(朝鮮朝)에 부사(府使)를 지냈다.

박진욱(朴震郁) 자(字)는 여망(汝望).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박세관(朴世觀) 자(字)는 상실(尙實). 조선에서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지냈다.

박창정(朴昌禎) 자는 국로(國老). 조선 때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박세적(朴世勣) 자(字)는 홍보(洪甫). 조선조에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박창혁(朴昌赫) 자는 성대(聖大). 조선(朝鮮) 때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박상신(朴尙臣) 자(字)는 성좌(誠佐). 조선 때 참찬관(參贊官)을 역임하였다.

박성은(朴聖殷) 자(字)는 내열(乃悅). 조선(朝鮮) 떄 부총관(副摠管)을 지냈다.

박세순(朴世詢) 자는 후여(厚汝). 조선에서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박운경(朴雲璟) 자(字)는 덕현(德玄).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박세우(朴世佑) 자(字)는 여장(汝長). 조선조(朝鮮朝)에 참의(參議)를 지냈다.

박상희(朴尙希) 자(字)는 군붕(君朋). 조선(朝鮮) 때 부총관(副摠管)을 역임했다.

박취은(朴就殷) 자는 지중(之中). 조선 때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박태효(朴泰孝) 자(字)는 경윤(敬允). 조선에서 좌승지(左承旨)를 역임하였다.

박창효(朴昌孝) 자(字)는 순도(純道). 조선 때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지냈다.

박만지(朴萬枝) 자는 사언(士彦). 조선조에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박만우(朴萬宇) 자는 효욱(孝郁). 조선(朝鮮) 때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지냈다.

박광순(朴光淳) 자(字)는 순국(淳國).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박사문(朴師文) 자(字)는 백항(伯恒), 호(號)는 죽와(竹窩). 조선조(朝鮮朝)에 대사간(大司諫)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