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삼척심씨시조(三駐沈氏),심동로(沈東老),삼척심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4-21 16:36 수정일 : 2018-02-20 15:45

삼척심씨의 유래(三駐沈氏 由來)

성균관에서 간행한 대동방 씨족 원류사에 따르면 고조선 시대에 해당하는 주(周)왕조의 성왕(成王)이 문왕(文王)의 아들인 담계재(聃季載)를 삼국(三國)에 봉(封)함으로서 그의 자손들이 심씨(沈氏) 성을 갖게 된 것 그리고 초장왕(楚莊王)이 공자(公子) 정(貞)을 沈 (하남의 沈丘)에 봉하므로서 沈氏 성의 始作이다.

公式 기록이 전하는 고려시대 최초의 沈氏 성을 가진 인물은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냈으며 몽계필담(夢溪筆談)의 저술자로 알려진 심괄(沈括:1031-1096)이라고 여겨지다.

1903년에서 1908년 사이에 칙명 (勅命)에 의해 편찬 간행된 「증보문헌 비고(增補文獻 備考)」와 「조선씨족통보 (朝鮮氏族統譜)」에는 각각 63개 혹은 70개의 沈氏本貫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지파(支派) 들이 거주하는 지명(地名)들의 숫자라고 바야 할 것이다.


삼척심씨의 연원(삼척심씨시조)

삼척심씨는 고려조의 심동로(沈東老)를 시조(始祖)로 하고 있다.(1310-1380)

초명이 한(漢) 호가 신재(信齋)인 시조(始祖) 심동로(沈東老)는 고려 층선왕조에서 공민왕조에 걸쳐 활동하 였으며 1342(충혜왕 2년)에 생진(生進) 2等에 합격하고 같은 해 가을에 병과(丙科) 一等으로 문과(文科)에 급제한 후 직한원사(直翰院事)를 필두로 판예문검열(判藝文檢聞) 판수찬춘추관(判修撰春秋官) 판예문수찬(判藝文修撰) 판밀직당후관(判密直堂後官) 승봉랑통예문지후(承奉 郞通禮門祗侯) 봉선대부중서사인지제고(奉善大夫中書舍人知制1話) 예의판서(w豊儀判書) 집현전제학(集賢殿提學) 등을 두루 역임 하였으며 통주지시(通州知事) 에 임명되어 목민관(牧民官)으로서 격륜을 펼치기도 하였다.

권신(權臣)들의 전횡(專橫)을 보다 못해 벼슬을 버리고 삼척부(三陟府)로 물러났다. 동로(東老)는 노인이 동쪽으로 내려간다 하여 공민왕이 직접 지어 내려준 사명(賜名)이다.

삼척에 은퇴한 동로(東老)는 해암정(海岩亭)을 지어 후학을 양성 하며 노후를 보냈다.

공(公)에 유훈(遺訓)에 따라 삼척으로 창본(創本)하여 후손들이 관향(貫鄕)으로 삼았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삼척심씨는 남한에 17,03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삼척심씨조상인물

조선시대

심산보(沈山甫) : 1447년(세종 30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453년 문과에 장원하여 도사(都事) 병조정 랑(兵曹正郞)을 역임

심가보(沈家甫): 자 세신(世臣) 호 문암(門岩) 1453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468년 문과에 급제 양구(楊口) 흡곡현감을 거쳐 직강(直講)에 임명되였다.

심희전(沈希佺) : 자 운경 (雲卿) 호 수암(睡岩) 1486년 사마시에 합격 1516년 문과에 장원 병조좌랑(兵曹佐郞)을 거쳐 홍원 흡곡현감을 역임

심준(沈 濬) : 자 지원(智源) 1486년 문과에 급제하고 호조좌랑(戶曹佐郞)겸 춘추관 기주관 지제교를 역임하고 승정대부(承政大夫) 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에 추증되였다.

심인경(沈彦慶): 호 적연(碩淵) (1479-1556). 1516년 문과에 급제하고 내외청보직을 거쳐 이조판서(吏曹判 書) 홍문관제학(弘文館提學) 예조판서(禮曹判書) 지춘 추관사(知春秋館事) 동지 경 연사(同知經延事) 세자좌빈 객(世子左賓客)등을 거처 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 에 이르렀다.

심연광(沈彦光): 자 사형(士炯), 호 어촌(漁村), 시호(盆號) 문공(文恭) 0487-1540) 1507년에 사마(司馬) 1513 년에 문과(文科)에 급제 그 해 한림(翰林)의 검열(檢聞) 에 천거된 후 병. 예 양조(兵, 禮 兩曹)의 정랑(正郞)과 홍문관 수찬을 거처 1530년 강원도 관찰사를 지내고 대사성(大司成) 대사간(大司陳) 대사헌(大司憲) 공조판서(工曹判書) 이조판서(吏曹判書) 의정부좌참찬(議政府左 參贊) 증, 홍문관, 예문관 대제학(贈 弘文館, 藝文館 大提學) 등을 역임하였으며 중종(中宗) 32년0537년) 이 조판서 재임 시 명나라 정사공용경 (正使興用卿)과 부사 오희맹(副使 吳希孟) 래조시 관반사(館伴使)로 그들과 교유(交遊)하며 시를 수창)했을 정도로 시문(詩 文)에 뛰어났다.

심보영(沈普永): 字 伯天, 號 被桂軒, 官職 縣監,  1793년(정조17년) 공평과에 금제하고 병조좌랑(兵曹佐郞) 및 지평(持平)을 거쳐 홍원현감(洪原縣監)을 역임하였다.

근대 인물

심연수(沈連洙) : 1918-1945. 저항시인(抵抗詩人) 심연수 (沈連洙)는 7세때 가족과 함께 러시아 블라디보스톡크로 이주 18세때 중국 길림성 용전시로 이사하여 동흥중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 4월에 일본대학 예술학원 창작 학과에 입학 항일 창작활동을 하였으며 1943년 7월 졸업하면서 식민통치정책으로 친일문학이 양산되던 시기에 심연수 시인은 시 (詩) 300여편 수필, 소설, 일년치 일기등의 유고(遺稿)를 남김, 저항시인 심연수는 해방 되기 1주일전 1945년 8월 8일 만주 왕청현 춘 양진(春陽鎭)에서 일본 앞잡이에 의해 27세 나이로 피살됨.

그의 시 세계는 망명지에서의 암울한 시대를 살면서 우리 고유어를 때로는 전통적인 운율, 때로는 모러니즘의 감각에 담아 서정성과 저항성이 내면화된 민족적 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연변 인민출판사 20세기 중국 조선족 문학사료전집 제 1집 심연수 문학편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