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청주양씨시조(淸州楊氏),양기(楊起)

작성일 : 2017-04-22 14:47 수정일 : 2018-04-11 15:53

청주양씨 연원

청주양씨의 연원(淵源)은 中國의 공손황제(公孫製帝)의 세계(世系)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의 41世孫 백교(伯橋)가 양씨의 태시조(太始祖)이다. 후한(後漢) 때 관서부자(關西夫子), 사지공(四知公)으로 일컫는 양진(楊 震. 字伯起)은 60世孫으로 본향(本鄕)이 홍농(弘農)이 어서 그 후손을 홍농양씨(弘農楊氏)라 한다.

양진(楊震)의 43世孫 양기(楊起)가 원(元)나라 정승으로 있다가 서기 1351年 12月 25日(고려사 28권 2장) 고려 공민왕(태자 때)이 원(元)나라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 公主)와 결혼하여 북경에 머무르고 있던 중 왕위(王位)에 오르기 위하여 환국할 때, 노빈도령(썬嬪都令)으로 공주를 배종하여 동래(東來)하였으며, 그 후 만 백성의 적폐였던 세공(동녀 5천인, 준마 3만필 등)을 삭감하여 그 빛나는 공훈으로 나라에서 삼중대광보국 숭록대부(三重大匡輔國 崇祿大夫) 및 상당백(上黨伯)을 봉하고 본관을 청주로 사관(賜貫)하여 청주양씨의 시조(始祖)가 되었다. 그 후 다시 벽상삼한창국공신(壁上三韓昌 國功臣)에 오르고 청백리(淸白吏)에 록선(錄選) 되었으며, 1394年 92세로 서거하여 시호(盆號)를 충현(忠憲) 으로 내렸다. 호(號)는 암곡(巖谷)이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청주양씨는 남한에 38,16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