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금구이씨시조(金溝李氏),이주(李澍),금구이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4-29 17:38 수정일 : 2018-07-18 10:39

시조 및 본관의 유래

금구이씨(金溝李氏)의 시조(始祖) 이주(李澍)는 고려조(高麗朝)에서 가선대부(嘉善大夫)․홍문관 대제학(弘文館大提學)을 지냈으며 봉산(鳳山 : 금구 고호) 군(君)에 종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本貫)을 금구(金溝)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금구(金溝)는 전라북도 김제군에 속한 지명으로 본래 백제시대의 구지산현(仇知山縣)인데, 통일신라의 경덕왕 때 금구현(金溝縣)으로 개명하여 전주(全州)의 속현(屬縣)으로 삼았다.

고려․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름이 계승되었고 1895년(고종 32)에 군(郡)으로 승격하여 전주부(全州府)에 예속되었으나, 1914년 면(面)으로 격하되어 김제군에 편입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주(澍)의 아들 공수(公遂)가 시중랑(侍中郞)을 거쳐 숭정대부(崇政大夫)에 올랐으며, 손자 온(溫)이 판위위시사(判衛尉寺事)를 지냈다.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이조 판서(吏曹判書)를 지낸 을재(乙材)가 이름났고, 이조 참의(吏曹參議)를 지낸 그의 아들 수공(粹恭)과 이조 참판(吏曹參判)을 지낸 손자 회지(會智) 등이 명문의 대(代)를 이었다.

그 외의 인물(人物)로는 부사(府使)를 거쳐 찬성사(贊成事)에 이른 철견(鐵堅)과 판윤(判尹)을 지낸 세방(世芳)을 비롯하여 현감(縣監) 옥견(玉堅)․직장(直長) 철민(哲民)이 가문을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금구이씨(金溝李氏)는 남한(南韓)에 16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 금구이씨조상인물

이공수(李公遂) 고려(高麗) 때 시중랑(侍中郞)을 역임하였다.

이온(李 溫) 고려 때 판위위사(判衛尉事)를 지냈다.

이석견(李石堅) 회지(會智)의 아들. 조선(朝鮮) 때 경성 판관(鏡城判官)을 지냈다.

이철견(李鐵堅) 석견(石堅)의 아우. 조선조(朝鮮朝)에 부사(府使)를 거쳐 찬성사(贊成事)에 이르렀다.

이휘문(李輝門) 석견(石堅)의 아들. 조선(朝鮮) 때 병조 판서(兵曹判書)를 지냈다.

이세방(李世芳) 철견(鐵堅)의 아들. 조선(朝鮮) 때 자헌대부(資憲大夫)로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지냈다.

이윤(李 胤) 셋방(世芳)의 아들. 조선조에 군수(郡守)를 지냈다.

이옥견(李玉堅) 회지(會智)의 셋째 아들. 조선조(朝鮮朝)에 현감(縣監)을 지냈다.

이세신(李世臣) 조선조(朝鮮朝)에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올랐다.

이현(李 晛) 호(號)는 풍탄(楓灘). 조선조에 통사랑(通仕郞)․군자감봉사(軍資監奉事)를 지냈다.

이철민(李哲民) 조선(朝鮮) 때 직장(直長)을 지냈다.

이윤부(李胤溥) 철민(哲民)의 손자. 조선조(朝鮮朝)에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올랐다.

이사언(李士彦) 조선조에 부사(府使)를 지냈다.

이경(李 擎) 조선조(朝鮮朝)에 군기시정(軍器寺正)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