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7-04-29 21:07 수정일 : 2017-11-17 16:35
시조 및 본관의유래
남평이씨(南平李氏)의 시조(始祖)는 이동말(李東秣)이다. 그는 조선조(朝鮮朝)에서 정헌대부(正憲大夫)에 올라 병조 판서(兵曹判書)를 역임한 후 보조공신(補助功臣)으로 녹훈(錄勳)되어 남평군(南平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동말(東秣)을 시조(始祖)로 삼고 본관(本貫)을 남평(南平)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남평(南平)은 전라남도(全羅南道) 나주군(羅州郡)에 속해있는 지명(地名)으로, 본래 백제(百濟)의 미동부리현(未冬夫里縣)을 통일신라(統一新羅) 때 경덕왕(景德王)이 현웅현(玄雄縣)으로 고쳐 무주(無主 : 광주의 옛 이름)에 속하게 하였다.
고려조(高麗朝)에서는 남평(南平) 또는 영평(永平)으로 불리웠고, 그후 여러 차례 변천을 거쳐 1913년 나주군(羅州郡)에 합해져서 지금의 남평면(南平面)이 되었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동말의 손자(孫子) 문장(雯章)이 조선(朝鮮) 때 부사(府使)를 지냈으며, 문장(雯章)의 맏아들 은흥(銀興)은 선조(宣祖) 때 무과에 급제한 후 어모장군(禦侮將軍)을 거쳐 용양위 부사과(龍驤衛副司果)를 역임하였다.
그 외 이괄(李适)의 난(亂) 때 순절(殉節)한 충원(忠元)과 현종(顯宗) 때 무과에 급제한 후 선략장군(宣略將軍)․절충장군(折衝將軍)․군수(郡守)를 지낸 관(灌)이 대표적이고, 유룡(裕龍)과 정용(禎龍)은 다같이 통덕랑(通德郞)을 역임하여 가문을 빛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평이씨(南平李氏)는 남한(南韓)에 63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 대 인 물
이문장(李雯章) 조선(朝鮮) 때 부사(府使)를 지냈다.
이은흥(李銀興) 자(字)는 식보(識甫). 1594년(선조 27) 무과에 급제한후, 어모장군(禦侮將軍)․ 용양위 부사과(龍驤衛副司果)를 역임하였다.
이충원(李忠元) 자(字)는 인걸(人傑). 1624(인조 2) 이괄(李 适)의 난 때 순절(殉節)하였다.
이관(移 管) 자(字)는 내종(乃宗). 1665년(현종 6) 무과에 급제한 후, 선략장군(宣略將軍)․ 용양위 부사과(龍驤衛副司果)를 거쳐 절충장군(折衝將軍)․곽산 군수(郭山郡守)등을 역임하였다.
이유룡(李裕龍) 자(字)는 인선(仁先). 조선 때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이정룡(李禎龍) 자(字)는 이황(利晃). 조선조(朝鮮朝)에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