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단성이씨시조(丹城李氏),이현(李峴),단성이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4-29 21:13 수정일 : 2018-04-05 20:46

시조 및 본관의 유래

단성이씨(丹城李氏)의 시조(始祖)는 고려에서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한 이현(李 峴)이며 그의 선계(仙界)는 문헌(文獻)이 실전(失傳)되어 상고(詳考)할 수 없다.

그 후 후손 원발(元發)이 태자첨사(太子詹事)를 지냈으며 원발(元發)의 7세손 영보(永寶)가 조선(朝鮮)에서 호조 판서(戶曹判書)를 역임하고, 문공서원(文公書院)의 원장(院長)으로 단성(丹城)에 정착 세거(定着世居)하면서부터 후손들이 원발(元發)을 일세조(一世祖)로 삼고 관향(貫鄕)을 단성(丹城)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단성(丹誠)은 경상남도 산청군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단계(丹溪)․강성(江城)의 2현(縣)이 합하여 이루어진 이름이다. 강성현은 본래 신라시대의 궐지현(闕之縣)인데, 통일신라의 경덕왕 때 궐성군으로 개명하였으며, 고려시대 초기에 강성군(江城郡)으로 개칭하였다. 공양왕 때 강성현으로 강등시켜 감무(監務)를 두어 다스렸으며, 조선시대에 일시 명진현(溟珍縣)과 합하여 진성현(珍城縣)이라 칭하기도 하였으나, 후에 다시 복구되었다.

단계현은 본래 신라시대 전기의 적촌현(赤村縣)인데, 통일신라의 경덕왕 때 단읍현(丹邑縣)으로 고쳤으며, 고려시대 초기에는 단계현으로 개명하였으나, 조선 세종 때에 단계․강성의 2현을 합하여 단성현으로 개칭하였고, 1895년(고종 32) 군(郡)으로 승격되었다가, 1914년 군(郡)을 폐(廢)하여 산청(山淸)으로 합(合)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고려에서 대호군(大護軍)을 지낸 원발의 아들 유거(惟擧)와 상의원 직장(尙衣院直長)을 지낸 그의 아들 숭간(崇幹)이 유명하였으며, 우부승선(右副承宣) 종(棕)은 동정(同正)을 역임한 계인(桂仁)의 아들로 그의 아들 승민(承敏 : 직제학을 역임)과 함께 가문을 중흥시켰다.

그밖에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작(綽 : 예조 참판을 역임)․윤(稐 : 감찰을 역임)․체(棣 : 동부승지를 역임)․매(枚 : 공조 참판을 역임) 등이 뛰어났고, 현감(縣監) 백형(伯亨)과 공조 참의(工曹參義)에 오른 철주(鐵柱)가 선조(先祖)들의 뒤를 이어 가문을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단성이씨(丹城李氏)는 남한(南韓)에 2,47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 단성이씨조상인물

이유거(李惟擧) 고려(高麗) 때 대호군(大護軍)을 역임하였다.

이숭간(李崇幹) 고려 때 상의원 직장(尙衣院直長)을 지냈다.

이계인(李桂仁) 고려 때 예빈시 동정(禮賓寺同正)을 지냈다.

이종(李 悰) 고려조(高麗朝)에 우부승선(右副承宣)을 역임하였다.

이승민(李承敏) 고려 때 직제학(直提學)을 지냈다.

이영보(李永寶) 조선(朝鮮) 초에 여러 벼슬을 거쳐 호조 판서(戶曹判書) 겸 경연춘추관사(經筵春秋館事)․도총부 총관(都摠府摠管)을 역임했다.

이작(李 綽) 조선 때 예조참판(禮曹參判)을 역임하였다.

이윤(李 稐) 조선(朝鮮)에서 감찰(監察)을 지냈다.

이체(李 棣) 조선 때 동부승지(同副承旨)를 역임하였다.

이매(李 枚) 조선조(朝鮮朝)에 공조 참판(工曹參判)을 역임하였다.

이백형(李伯亨) 조선(朝鮮) 때 현감(縣監)을 지냈다.

이철주(李鐵柱) 조선(朝鮮) 때 공조 참의(工曹參義)를 역임하였다.

이원일(李源一) 호(號)는 재목(齋沐). 조선 때 정언(正言)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