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봉산이씨시조(鳳山李氏),이수(李隨),봉산이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01 12:05 수정일 : 2018-07-27 10:00

시 조

봉산이씨시조(鳳山李氏 始祖) 이수(李隨)는 태조(太祖) 때 생원시(生員試)에 장원하고 태종(太宗)이 인재를 구할 때 성균관의 천거로 뽑혔으나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 사퇴하였고, 이듬해 충녕대군(忠寧大君 : 세종)의 사부(師傅)가 되었다. 그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의정부 참찬(議政府參贊)을 거쳐 병조 판서(兵曹判書)에 이르렀으나 취중에 말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특히 그는 문장(文章)과 덕행(德行)이 높았고, 봉산(鳳山)의 토지(土地)를 하사(下賜)받아 후손들이 그곳에서 정착 세거(定着世居)하면서 본관(本貫)을 봉산(鳳山)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본관의 유래

봉산(鳳山)은 황해도(黃海道) 중앙 북쪽에 위치하는 지명(地名)으로, 본래 고구려(高句麗) 때 휴암군(鵂巖君) 또는 조파의(租坡衣)휴류성(鵂鶹城) 등으로 불리우다가 통일신라(統一新羅) 때 서암군으로 고쳤고, 고려 초에 봉주로 개칭하여 방어사(防禦使)를 두었으나 현종(顯宗) 때 폐하고 황주(黃州)에 속하게 되었다.

그후 충렬왕(忠烈王) 때 봉양군(鳳陽君)으로 고쳐 지사(知事)를 두었다가 후에 다시 봉주로 개칭하였으며, 조선조(朝鮮朝)에 와서 태종(太宗)이 봉산군(鳳山郡)으로 고쳐 오늘에 이르렀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수(隨)의 아들 4형제 중 맏아들 귀종(龜從)이 세종(世宗) 때 태학(太學)에 천거되어 통훈대부(通訓大夫)․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 겸 춘추관 기주관(春秋館記注官)을 지냈고 차남 서종(筮從)은 호조 좌랑(戶曹佐郞)을 역임하였다. 삼남 복종(福從)은 평산 부사(平山府使)를, 막내인 길종(吉從)은 참봉(參奉)을 역임하여 대(代)를 이어 가문을 빛냈다.

그 밖에 조선조(朝鮮朝)에 현령(縣令)을 지낸 즙(楫), 병마사(兵馬使)를 역임한 팽구(彭丘)와 경차관(敬差官)을 지낸 영(坽)은 봉산 이씨(鳳山李氏)를 문(文)의 가문(家門)으로 기틀을 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봉산이씨(鳳山李氏)는 남한(南韓)에 8,695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 봉산이씨조상인물

이귀종(李龜從) 자(字)는 중화(重華). 조선 때 지평(持平)을 역임하였다.

이서종(李筮從) 자(字)는 영서(靈瑞). 조선 때 호조 좌랑(戶曹佐郞)을 역임하였다.

이즙(李 楫) 자(字)는 복규(復圭). 조선조에 현령(縣令)을 지냈다.

이서(李 舒) 조선조(朝鮮朝)에 진사(進士)였다.

이복종(李福從) 자(字)는 내지(來之). 조선 때 부사(府使)를 지냈다.

이길종(李吉從) 조선(朝鮮) 때 참봉(參奉)을 역임했다.

이팽구(李彭丘) 조선조에 병마사(兵馬使)를 역임했다.

이사숙(李思淑) 조선조(朝鮮朝)에 진사(進士)였다.

이엽(李 燁) 자(字)는 회언(晦彦), 호는 영모재(永慕齋). 조선 때 생원(生員)이었다.

이관일(李貫一) 자(字)는 대이(大而). 조선(朝鮮) 때 생원(生員)이었다.

이탄(李 坦) 자(字)는 일언(一彦). 조선조에 판윤(判尹)을 역임했다.

이숭조(李崇祚) 자(字)는 자장(子長). 조선(朝鮮) 때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역임했다.

이덕(李 德) 자(字)는 덕필(德弼). 조선조(朝鮮朝)에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했다.

이수민(李秀民) 자(字)는 제세(劑世). 조선 때 참봉(參奉)을 역임했다.

이영(李 坽) 조선(朝鮮) 때 경차관(敬差官)을 역임했다.

이계한(李繼漢) 자(字)는 구암(久菴). 조선(朝鮮) 때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했다.

이질(李 垤) 조선(朝鮮) 때 우후(虞侯)를 역임했다.

이돈(李 墩) 조선(朝鮮) 때 우후(虞侯)를 지냈다.

이두명(李斗明) 조선조에 현감(縣監)을 역임했다.

이정인(李貞仁) 조선조(朝鮮朝)에 생원(生員)이었다.

이귀서(李貴恕) 자(字)는 덕추(德推). 조선 때 판관(判官)을 역임했다.

이수생(李秀生) 자(字)는 사고(士高). 조선 때 참봉(參奉)을 역임했다.

이여성(李汝晟) 자(字)는 숙필(叔弼). 조선조(朝鮮朝)에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했다.

이석자(李碩梓) 자(字)는 여대(汝大). 조선 때 판관(判官)을 지냈다.

이정식(李正植) 자(字)는 내필(乃弼), 호(號)는 옥강(玉岡). 조선조에 생원(生員)이었다.

이익룡(李翊龍) 자(字)는 성언(聖彦). 조선조에 진사(進士)였다.

이익기(李翊寄) 자(字)는 성좌(聖佐). 조선 때 참판(參判)을 지냈다.

이봉구(李鳳九) 자(字)는 문연(文演), 호(號)는 곤은(壼隱). 조선 때 참판(參判)을 역임했다.

이붕(李 鵬) 자(字)는 대봉(大鳳). 조선조에 참의(參議)를 역임했다.

이정준(李廷俊) 자(字)는 항백(恒伯). 조선 때 총관(摠管)을 역임했다.

이학종(李學從) 자(字)는 사성(士成). 조선 때 오위장(五衛長)을 지냈다.

이영욱(李永旭) 자(字)는 순서(舜瑞), 호(號)는 구강(龜岡). 조선(朝鮮)때 돈령부 도정(敦寧府都正)을 역임했다.

이신풍(李信豊) 자(字)는 찬서(贊瑞), 호(號)는 쌍송당(?双松堂). 조선때 참봉(參奉)을 역임했다.

이영풍(李永豊) 자(字)는 관서(寬瑞). 조선조에 참봉(參奉)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