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사천동성이씨(泗川東城李氏),동성이씨,사천이씨,이식(李軾),사천동성이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01 14:44 수정일 : 2018-07-16 15:54

시 조

동성이씨(東城李氏)의 선대(先代)는 중국 농서이씨(隴西李氏)에서 분파(分派)되어 사천(泗川)에 세거(世居) 하였다. 시조(始祖) 이식(李軾)은 고려(高麗) 충렬왕(忠烈王) 때 국자감(國子監) 진사(進士)로 송악 군수(松岳郡守)를 역임했으며, 그의 6세손 자가 담양교도(潭陽敎導)를 지낼 때까지 모두 6대에 걸쳐 진사(進士)를 지냈고, 후손들이 사천(泗川)에서 누대(累代)에 걸쳐 사족(士族)으로 토착 세거(土着世居) 하며 동성(東城)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본관의 유래

동성(東城)은 경상남도 남부에 위치한 사천(泗川)의 옛 지명으로 본래 신라의 사물현(史物縣) 이었던 것을 경덕왕(景德王)이 사수(泗水)로 고쳐 고성군(固城郡) 영현(領縣)으로 삼았으며 고려시대에 사주(泗州), 조선 태종 때 사천(泗川)으로 고쳤고 1895년(고종 32) 군(郡)으로 승격하였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후손 정(楨)이 일찍이 당대에 이름난 성리학의 대가 송인수(宋麟壽)의 문하에서 글을 읽고, 중종(中宗) 때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장원하여 삼사(三司)의 벼슬을 거쳐 경주 부윤(慶州府尹)이 되었다. 그 후 선조대(宣祖代)에 이르기까지 4조(朝)에 걸쳐 나라에 많은 공적을 남겼으며, 벼슬이 대사간(大司諫)을 거쳐 부제학(副提學)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성리학(性理學)에도 밝아 퇴계(退溪) 이 황(李 滉)과 친교가 있었으며 「성리유편(性理遺篇)」을 저술하였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전국에 사천이씨는 8,616명 동성이씨는 2,938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역대 인물 - 사천동성이씨조상인물

이세방(李世芳) 고려조(高麗組)애 영동정(令同正)을 지냈다.

이자(李 禾玆) 조선 때 담양(潭陽) 교도(敎導)를 지냈다.

이정(李 楨) 1512(중종 7)~(선조 4), 자(字)는 강이(剛而), 호(號)는 귀암(龜巖), 담(湛)의 아들. 송인수(宋鱗壽)․이 황(李 滉)의 문인. 1536년(중종 31) 진사(進士)로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장원, 대사헌(大司憲)․대사간(大司諫)․대사성(大司成)을 역임하고 부제학(副提學)에 이르렀다. 성리학(性理學)에 밝아 「성리유편(性理遺篇)」과 「경현록(景賢錄)」을 편집하였으며, 사천(泗川)의 구계서원(龜溪書院)과 구산사(龜山飼)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