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7-05-04 13:27 수정일 : 2018-04-17 20:42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음죽(陰竹)은 충청북도 음성군(陰城郡)과 경기도 이천군(利川郡)의 일부 지역에 있던 통일신라 때의 지역명으로 본래 진한(辰韓)의 노람국(奴藍國)이 있었던 지역인데, 고구려 때 노음죽현(奴音竹縣)이라 하고, 통일 후 경덕왕이 음죽현으로 고쳐서, 고려 · 조선 시대에도 그대로 따랐다.
1895년(고종 32) 음죽군으로 승격이 되었으나 1914년 군(郡)을 폐하고 그 땅을 나누어 동면(東面)의 노평리(老坪里) 일부, 하울면(下栗面)의 총곡리(叢谷里) 일부, 상율면(上栗面)의 팔성리(八星里) 일부 및 석교촌(石橋村) 일부는 충청북도 음성군에 속하고, 나머지는 경기도 이천군에 병합되었다.
음죽이씨(陰竹李氏)의 시조(始祖)인 이방서(李方瑞)는 고려 (高麗) 때 밀직사사(密直司事)를 지냈으며, 그의 손자인 헌조(憲兆)는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고, 이천에 정착 세거(定着世居)하였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음죽(陰竹 : 이천의 古號)을 본관(本貫)으로 하여 세계 (世系)를 이어왔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을 빛낸 인물로는 고려 때 장사랑(將仕郞)을 지낸 맹문(孟文)과 수문장(守門將)을 지낸 상우(尙友)가 있다.
인 구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음죽이씨(陰竹李氏)는 남한(南韓)에 총 62가구, 30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는 462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