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요양자씨시조(遼陽慈氏),자호상(慈好祥),요양자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07 19:24 수정일 : 2018-08-29 13:56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자씨(慈氏)는 중국(中國) 형주현(荊州縣) 동주(憧州) 사람인 자호상(慈好祥)을 시조(始祖)로 하고 있다.「요양자씨세보(遼陽慈氏世譜)」에 의하면, 그는 1557년(명나라 가정 36) 영군부장(領軍副將)으로 몽고(蒙古) 정벌(征伐) 때 순절(殉節)하였고, 그의 아들 홍선(弘善)이 요양(遼陽)으로 이거(移居)하여 살았다고 한다. 우리 나라 자씨(慈氏)의 시원(始源)은 홍선(弘善)의 아들 경보(慶輔)․순직(順直)․순희(順熙)․경조(慶祖) 4형제가 명나라 신종(神宗) 때 전란(戰亂)을 피해 동래(東來)하여 길주(吉州) 남쪽 설봉산(雪峯山) 밑에 정착(定着)하여 살면서부터이다. 후손들은 전세거지(前世居地)인 요양(遼陽)을 관향(貫鄕)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자씨(慈氏)의 본관(本貫)은 요양(遼陽) 외에도 해주(海州)와 중원자씨(中原慈氏)가 있는 것으로「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기록되어 있으나, 시조(始祖) 및 계대(系代)에 대해서는 문헌(文獻)이 전하지 않아 상고(詳考)할 수 없다.

요양(遼陽)은 중국 랴오닝성의 도시로 랴오허강(遼河)의 지류 타이쯔강(太字河) 좌안에 위치한다. 동북(東北) 지방에서는 가장 일찍이 한인(漢人)이 입식(入植)한 곳으로, 진(秦)․한대(漢代)를 통하여 요동군(遼東郡)의 치소(治所)가 되어 왔으나, 5호16국시대(五胡十六國時代)에 고구려의 영토로 편입되어 요동성(遼東城)이라고 불렀다.

당(唐) 태종(太宗)이 이곳을 공략하여 요주(遼州)라 개칭하고, 요(遼)가 발해국(渤海國)의 유민(遺民)을 다스리기 위해 이 곳에 동단국(東丹國)을 세웠으나, 뒤에 오경(五京)의 하나로 동경 요양부(東京遼陽府)를 두었는데, 그것이 현 지명의 기원이다.


대표적인 인물

요양자씨(遼陽慈氏)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조선조(朝鮮朝)에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충국(忠國)과 만선(萬先)이 유명했으며, 취덕(就悳)과 석항(碩恒)․만찬(萬贊) 등은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으며 만흘(萬屹)은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은강(銀綱)과 명은(明殷)은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러 가문(家門)을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요양자씨(遼陽慈氏)는 남한(南韓)에 55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 요양자씨조상인물

자순직(慈順直) : 조선조에 통정대부(通政大夫)로 공조(工曹) 참의(參議)에 추증(追贈)되었다.

자술립(慈述立) : 조선(朝鮮) 때 절충장군(折 衝將軍)에 이르렀다.

자예손(慈禮孫) : 조선 때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에 추증되었다.

자용철(慈龍哲) : 조선에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자중철(慈仲哲) : 조선조(朝鮮朝)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자충국(慈忠國) : 조선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자만주(慈萬柱) : 조선에서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자만추(慈萬樞) : 조선(朝鮮)에서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자만선(慈萬先) : 초명(初名)은 선발(先發). 조선조(朝鮮朝)에 자헌대부(資憲大夫)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자만후(慈萬後) : 조선 때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자만흘(慈萬屹) : 조선(朝鮮)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자만적(慈萬迪) : 조선에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자만찬(慈萬贊) : 초명(初名)은 만발(萬發). 조선조(朝鮮朝)에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용양위(龍驤衛)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했다.

자취덕(慈就悳) : 자(字)는 영호(永鎬). 조선(朝鮮)에서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자시협(慈時協) : 조선 때 도정(都正)을 역임하였다.

자석항(慈碩恒) : 조선(朝鮮)에서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자동옥(慈東鈺) : 자(字)는 보여(寶汝). 조선조(朝鮮朝)에 효자(孝子)로 향민의 칭송을 받았다.

자은강(慈銀綱) : 초명(初名)은 원강(元綱). 조선(朝鮮)에서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자명은(慈明殷) : 초명(初名)은 명복(明福). 조선(朝鮮) 때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