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지례장씨시조(知禮張氏),장일성(張日成),지례장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08 15:18 수정일 : 2018-08-30 14:15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지례장씨(知禮張氏)의 시조(始祖)는 도시조(都始祖) 정필(貞弼)의 13세손인 장일성(張日成)이다. 장일성(日成)은 고려 신종(神宗) 때 우정승(右政丞)을 지낸 양위(良位)의 아들로 충숙왕(忠肅王)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이성계(李成桂)를 도와 아지발도(阿只拔都) 토벌에 공(功)을 세워 지례백(知禮伯)에 봉해졌다고「지례장씨세보(知禮張氏世譜)」에 기록하고 있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본관(本貫)을 지례(知禮)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지례(知禮)는 경상북도(慶尙北道) 북서부 금릉군 지역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신라의 지품천현(知品川縣)이었고 통일신라의 경덕왕이 지례(知禮)로 고쳐 개령군(開寧郡)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1018년(현종 9) 경산부(京山府)에 속하고 1390년(공양왕 2) 감무를, 조선 태종(太宗) 때 현감(縣監)을 두었고, 1896년(고종 32) 군(郡)이 되었다가 1914년 김천군(金泉郡)에 합(合)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 일성(日成)의 아들 구원(垢元)과 기원(基元) 형제(兄弟)가 뛰어났다. 맏아들 구원(垢元)은 사직(司直)을 지냈으며, 차남 기원(基元)은 1352년(공민왕 원년)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벼슬이 좌시중(左侍中)에 이르렀으나 조선(朝鮮)이 개국(開國)하자 벼슬에서 물러나 고려조(高麗朝)에 절개를 지켰다. 기원(基元)의 아들 운준(雲俊)은 1396년(태조 5) 진사(進士)에 올랐으나 정종(定宗) 즉위 시에 세상이 어지러움을 개탄하여 벼슬의 뜻을 포기하고 풍덕(豊德)에 은거하며 이름을 준(浚)으로 고친 후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귀(龜)는 준(浚)의 아들로 문장(文章)에 능했으며 뒤에 귀성군(龜城君)에 봉해져서 훌륭한 지례 장씨 가문(家門)을 더욱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지례장씨(知禮張氏)는 전국에 51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 지례장씨조상인물

장기원(張基元) : 1352년(공민왕 1) 문과에 급제한 후 좌시중(左侍中)에 이르렀으나 조선개국(朝鮮開國) 후 벼슬에서 물러나 고려조(高麗朝)에 절의(節義)를 지켰다.

장운준(張雲俊) : 일명 준(浚). 1396년(태조 5) 진사(進士)가 되었고 정종(正宗) 즉위 시 세상이 어지러움을 개탄하여 벼슬의 뜻을 포기하고 풍덕(豊德)에 은거하며 이름을 준(浚)으로 고친 후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장귀(張 龜) : 일명 오(奧), 초명(初名)은 월소(越小), 호(號)는 언제 (彦齊). 조선(朝鮮) 때 문장(文章)이 뛰어나 수 차례 교수(敎授)에 천거되었으나 사양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장세춘(張世春) : 조선조(朝鮮朝)에 장사랑(將仕郞)에 이르렀다.

장문길(張文吉) : 자(字)는 사일(士逸). 조선 때 무과(武科)에 급제, 임진란(壬辰亂) 때 연안성(延安城)을 고수하고 왜적을 토평한 공(功)으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錄勳)되고 훈련원(訓練院) 판관(判官)․주부(主簿)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