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진안장씨시조(鎭安張氏),장원렬(張原烈),진안장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08 15:53 수정일 : 2018-08-30 15:02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진안장씨(鎭安張氏)의 시조(始祖)는 충헌공(忠獻公) 정필(貞弼)의 13세손 장원렬(張原烈)이다. 원렬(原烈)은 고려(高麗) 신종(神宗) 때 쌍성총관(讐城摠管)․우정승(右政丞)을 지낸 양위(良位)의 둘째 아들로 고려에서 판서(判書) 평리(評理)를 지냈다고 「장씨상계세보(張氏上系世譜)」에 기록하고 있다. 그 후 그의 손자(孫子) 사익(思益)이 응양장군(鷹揚將軍)을 지낸 후 좌리공신(佐理功臣)으로 진안군(鎭安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은 원렬(原烈)을 시조(始祖)로 하고 본관(本貫)을 진안(鎭安)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진안(鎭安)은 전라북도 북동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진아(珍阿)인데 통일신라 경덕왕(景德王)이 진안(鎭安)으로 고쳐서 장계군(長溪郡)에 속하게 하였다. 고려 초에는 전주(全州)에 속하다가 조선시대 이후 다시 장계군에 속하였다. 1914년 용담군(龍潭郡)과 진안군이 통합되어 진안군(鎭安郡)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원열(原烈)의 맏아들 희주(希冑)가 고려에서 대장군(大將軍)을 지냈고, 차남 용길(用佶)은 부사(府使)를 역임하여 진안군(鎭安君) 사익(思益)과 함께 이름을 남겼다.

그외 현감(縣監)을 지낸 초(礎)와 용일(龍釰)이 뛰어났으며, 대호군(大護軍) 용기(龍起)와 참의(參議)를 역임한 재손(載孫) 등이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 가문(家門)을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진안장씨는 전국에 47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 진안장씨조상인물 

장희주(張希冑) 고려(高麗) 때 대장군(大將軍)을 역임하였다.

장용길(張用佶) 고려(高麗)에서 부사(府使)를 지냈다.

장초(張 礎) 조선(朝鮮)에서 현감(縣監)을 지냈다.

장사익(張思益) 시호(諡號)는 정효(靖孝). 조선(朝鮮) 때 총제사(摠制使)를 역임하였다.

장용기(張龍起) 조선(朝鮮) 때 대호군(大護軍)을 역임하였다.

장광조(張光祖) 조선(朝鮮) 때 군수(郡守)를 지냈다.

장재손(張載孫) 조선(朝鮮) 때 참의(參議)를 역임하였다.

장봉우(張鳳羽) 조선(朝鮮) 때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장광조(張光祖) 조선(朝鮮)에서 군수(郡守)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