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서경정씨시조(西京鄭氏),정지상(鄭知常)

작성일 : 2017-05-12 08:30 수정일 : 2018-04-18 15:48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서경정씨(西京鄭氏)의 시조(始祖) 정지상(鄭知常)은 1127년(인조 5) 좌정언(左正言)으로 척준경(拓俊京)을 탄핵하여 유배케 했으며, 1129년 좌사간(左司諫)으로서 윤언이(尹彦頤) 등과 함께 시정(時政)의 득실을 논하는 소(疎)를 올렸다.

묘청(妙淸)․백수한(白壽翰)의 음양비술(陰陽秘術)을 깊이 믿어 한때는 세 사람을 삼성(三聖)이라 칭했으며, 도읍을 서경으로 옮길 것과 북쪽의 금(金)나라를 정벌하고 고려의 왕(王)을 황제로 칭할 것을 주장하였다. 1130년 지제고(知制誥)로서 왕명을 받아 곽 여(郭 與)를 위해 「산재기(山齋記)」를 지었으며, 그 후 기거랑(起居郞)이 되었다. 역학(易學)과 시(詩)․서(書)․화(畵)에도 뛰어났다.

그의 후손(後孫) 응린(應麟)은 1510년(중종 5)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군수(郡守)와 지평(持平)․장령(掌令)․사간(司諫) 등을 지내고, 직제학(直提學)과 동부승지(同副承旨)․대사간(大司諫) 등을 거쳐 부평 부사(富平府使)를 지냈다.


인 구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서경정씨(西京鄭氏)는 남한(南韓)에 총 104가구, 265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