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청산정씨 시조(靑山鄭氏),정금강(鄭錦綱),청산정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12 13:24 수정일 : 2019-02-11 12:45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청산정씨(靑山鄭氏)는 고려말(高麗末)에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였으며, 이성계(李成桂)를 도와 조선개국(朝鮮開國)에 공(功)을 세워 개국공신(開國功臣)으로 좌의정(左議政)에 올라 청산군(靑山君)에 봉해진 정금강(鄭錦綱)을 시조(始祖)로 하고 있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본관(本貫)을 청산(靑山)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으나 선계가 실전(失傳)되어 그의 후손 운결(雲潔)을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계대(繼代)하고 있다.

청산(靑山)은 충청북도 옥천군(沃川郡)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원래는 신라 굴산현(屈山縣)으로 통일신라의 경덕왕이 기산현(耆山縣)으로 고치고, 고려 초에 청산현으로 개칭해서 상주(尙州)에 속하게 하였다.

1414년(태종 14) 황간현(黃澗縣)과 합하여 황청현(黃靑縣)이라 하였으나, 후에 다시 분리해서 청산현으로 복구하였고, 1895년(고종 32) 청산군으로 승격하였다가 1914년 군을 폐하여 옥천군에 편입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운결(雲潔)이 가선대부(嘉善大夫)를 거쳐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으로 연산군(燕山君)의 실정을 직간(直諫)하다가 종성부 교수(鍾城府敎授)로 좌천(左遷)되었으며 아들 희한(希漢)은 현감(縣監)을 지냈다.

희한(希漢)의 아들인 필(弼)은 주부(主簿)를 지냈으며, 동생 익(翼)이 목사(牧使)를 역임했고, 익(翼)의 셋째 아들 여소(汝疏)는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그 외 부사과(副司果)를 지낸 문우(文祐)와 판관(判官)을 역임한 효성(孝誠)이 당대에 이름을 떨쳤고,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한 종주(宗周)와 호조 정랑(戶曹正郞)을 지낸 봉상(鳳祥)이 가문을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청산정씨(靑山鄭氏)는 남한에 4,52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청산정씨조상인물

정희한(鄭希漢) 조선(朝鮮) 때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정필(鄭 弼) 조선(朝鮮)에서 주부(主簿)를 지냈다.

정익(鄭 翼) 조선조(朝鮮朝)에 목사(牧使)를 역임하였다.

정여주(鄭汝舟) 조선(朝鮮) 때 주부(主簿)를 지냈다.

정여해(鄭汝海) 조선(朝鮮)에서 교위(校尉)에 이르렀다.

정여흠(鄭汝欽) 자(字)는 근서(謹叙), 조선 때 부사(府使)를 지냈다.

정여소(鄭汝疏) 자(字)는 사문(士文). 조선조(朝鮮朝)에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정문우(鄭文祐) 자(字)는 수련(壽連). 조선(朝鮮)에서 부사과(副司果)를 지냈다.

정효성(鄭孝誠) 조선조(朝鮮朝)에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정빈(鄭 賓) 자(字)는 남래(南來) 조선(朝鮮) 때 첨절제사(僉節制使)를 역임하였다.

정종주(鄭宗周) 자(字)는 원경(遠卿) 조선(朝鮮)에서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정봉상(鄭鳳祥) 자(字)는 서응(瑞應). 조선(朝鮮) 때 호조 정랑(戶曹正郞)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