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7-05-30 13:29 수정일 : 2018-09-04 14:39
시조 및 본관의 유래
달성하씨(達城夏氏)는 중국(中國) 송(宋)나라의 귀화족(歸化族)으로 전하는데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의하면 송(宋)나라에서 대도독(大都督)이었던 하 흠(夏 欽)이란 사람이 고려(高麗) 인종(仁宗) 때 귀화(歸化)하여 달성(達城 : 대구의 옛지명)에 정착(定着)한 것이 우리나라 하씨(夏氏)의 시원(始原)이라고 한다.
그 후 흠(欽)의 아들 용(溶)이 고려 때 나라에 공(功)을 세워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시조(始祖)를 하흠(夏欽)으로 하고 본관(本貫)을 달성(達城)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달성(達城)은 대구(大邱)의 옛 지명으로, 대구(大邱)는 영남지방(嶺南地方)의 중앙부에 위치하며 경상도(慶尙道)의 행정중심지이다. 본래 신라(新羅) 때 달구화현(達句火縣 : 달불성)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이 대구(大丘)로 고쳐서 수창군(壽昌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고, 고려조(高麗朝)에 들어와 경산부(京山府)에 이속되었으며 1143년(인종 21) 현령(縣令)을 두었다.
조선(朝鮮) 세종(世宗) 때 대구현(大邱縣)에서 대구군(大邱郡)으로 승격되면서 수성(壽城)을 속현으로 두었고, 1466년(세조 12) 진(鎭)을 설치하여 도호부(都護府)가 되었다. 1750년(영조 26) 대구의 유생 이양채(李亮采)가 구(丘)자는 대성공자(大聖孔子)의 휘(諱)자이므로 이를 개칭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으나 왕의 윤허를 얻지 못했다가 80년대부터 점차 대구(大邱)로 쓰이기 시작했다. 1895년(고종 32) 대구군으로 칭하여 대구부에 속하였고 그후 대구부를 대구시로 개칭, 1981년 7월 1일을 기해 대구직할시(大邱直轄市)로 승격하였다.
대표적인 인물
달성하씨의 역사상 주요 인물(人物)로는 흠(欽)의 현손(玄孫) 광신(光臣)이 고려(高麗) 때 이부 시랑(吏部侍郞)을 역임하였으며, 혁하(赫河)가 대장군(大將軍)을 지냈다. 조선조에 와서는 인경(仁敬)이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시우(時雨)가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여 가문을 중흥시켰다.
그외 정조(正祖) 때의 학자(學者) 시찬(時贊)은 학행(學行)으로 유명했으며,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여 「열암집(悅庵集)」을 저술했다.
오늘날에 와서 하씨(夏氏)는 달성(達城)을 단본(單本)으로 하여 경북 달성(慶北達城)․경산 지방(慶山地方)과 경남 밀양(慶南密陽)․강원도 원주 지방(江原道原州地方)․전북 순창(全北脣瘡)․장수(長水) 지방 등지에 많이 살고 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달성하씨(達城夏氏)는 전국에 2,19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달성하씨조상인물
하치운(夏致雲) 고려(高麗) 때 대장군(大將軍)을 역임하였다.
하광신(夏光臣) 고려 때 이부시랑(吏部侍郞)을 역임하였다.
하우신(夏右臣) 고려에서 부사(府使)를 지냈다.
하득주(夏得柱) 고려(高麗) 때 사공(司空)을 지냈다.
하석주(夏石柱) 고려(高麗)에서 낭중(郎中)을 지냈다.
하우기(夏雨寄) 고려 때 병부랑(兵部郞)을 역임하였다.
하혁하(夏赫河) 고려조(高麗朝)에서 대장군(大將軍)을 역임하였다.
하관보(夏觀甫) 고려(高麗) 때 시중(侍中)을 역임하였다.
하이첨(夏爾沾) 고려(高麗) 때 사공(司空)을 지냈다.
하후승(夏候勝) 조선(朝鮮) 때 의영고사(義盈庫使)를 역임하였다.
하산령(夏山齡) 조선 때 예부랑(禮部郞)을 지냈다.
하석(夏 碩) 조선조(朝鮮朝)에 장악원정(掌樂院正)을 역임하였다.
하문(夏 汶) 조선 때 공조 참의(工曹參議)를 지냈다.
하인경(夏仁敬) 조선에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副使)를 역임하였다.
하운서(夏雲瑞) 조선(朝鮮)에서 판관(判官)을 지냈다.
하임우(夏임雨) 조선조(朝鮮朝)에 만호(萬戶)를 지냈다.
하점우(夏霑雨) 조선(朝鮮) 때 봉사(奉事)를 지냈다.
하무우(夏霧雨) 조선 때 만호(萬戶)를 역임하였다.
하시우(夏時雨) 조선(朝鮮)에서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하시찬(夏時贊) 1750(영조26)~1828(순조28) 호(號)는 열암(悅庵). 달성(達城) 출신. 송환기(宋煥箕)․이의조(李宜朝)의 문인. 학문(學問)이 깊고 시문(詩文)에 능했으며, 벼슬을 하지 않고 유생(儒生)으로 여생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