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항주황씨시조(杭州黃氏),황공(黃功),항주황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6-07 17:45 수정일 : 2019-02-13 14:31

시조 및 본관의 유래

항주황씨(杭州黃氏)의 시조(始祖)는 중국(中國) 명(明)나라 항주(杭州) 출신으로서 기산지휘사(祈山指揮使)․중도유수(中都留守) 등을 지내고, 1645년(인조 23) 나라가 망하자 심양(瀋陽)에서 소현세자(昭顯世子)와 함께 조선(朝鮮)에 귀화하였던 황공(黃 功)이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경기도 가평군 하면(下面) 마일리(馬日里)에 정착 세거(定着世居)하면서 선조(先祖)의 출신지인 항주(杭州)를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항주(杭州)는 중국(中國) 동부의 동지나해 연안에 있는 절강성(浙江省) 성도(省都)로서 전당강(錢唐江)의 하구에 위치하며 서쪽 교외에 서호(西湖)를 끼고 있다. 7세기에 수(隨)나라가 건설한 강남하(江南河)의 종점으로 도시가 열려 남송(南宋)시대에는 수도가 되었으나, 임시수도라는 뜻에서 행재(行在)라고 불리다가 임안(臨安)이라고 개칭되었다. 10세기 이후에는 외국선박의 출입이 많았고 항구의 이름이 널리 유럽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19세기에 태평천국군(太平天國軍)의 싸움으로 파괴되었고 남경조약(南京條約)에 의해 상해(上海)가 개항되자 항구로서의 번영은 상하이에게 빼앗기고 현재 성도(省都)로서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이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공(功)의 셋째 아들 용(用)이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정원 좌승지(承政院左承旨)를 지냈으며, 손자(孫子) 수명(秀命)은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호조참판(戶曹參判)을 역임하여 당대에 이름을 떨쳤다.

그 외 능천 현감(能川縣監)을 거쳐 오위장(五衛將)을 지낸 세중(世中)과 오위장(五衛將)에 이르러 전주 중군(全州中軍)을 역임한 재겸(載謙)이 훌륭한 가문을 더욱 빛냈다.


인 구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항주황씨(杭州黃氏)는 전국에 총 122가구, 402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역대 인물-항주황씨조상인물

황용(黃用) 자(字)는 중용(仲庸).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승정원 좌승지(承政院左承旨)를 역임하였다.

황수명(黃秀命) 자(字)는 자장(子長). 조선(朝鮮)에서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호조 참판(戶曹參判)을 역임했다.

황세중(黃世中) 자(字)는 군심(君心).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능천 현감(能川縣監)을 거쳐 오위장에 이르렀다.

황재겸(黃載謙) 자(字)는 익지(益之). 조선(朝鮮)에서 전주 중군(全州中軍)을 지냈다.

황종기(黃鍾岐) 1885년(고종 22)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