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11-02 10:13 수정일 : 2017-11-02 10:16
1332년(壬申) 송경(松京)에서 출생. 호(號)는 송은(松隱)으로 천성(天性)이 결백강직(潔白剛直) 준수(俊秀)하며 학문(學文)을 좋아하고 또한 효 성(孝誠)이 지극하며 지절(志節)이 매우 강하였다.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고려조(高麗朝)예의판서(禮儀判書)로 누진(累進) 하였다. 고려조(高麗朝)의 국세(國勢)가 쇠퇴하여 감에 우국충정(憂國衷情)으로 정포은(鄭圃隱)등 제사(諸士)와 더부러 국세(國勢)부흥(復興)에 진력(盡力) 하였으나 끝내 고려조(高麗朝)는 망(亡)하고 말았다.
공(公)은 망국(亡國)을 개탄(慨歎)하고 3일간이나 통곡(痛哭)하며 사원(士園)에서 신조불참동맹(新朝不參 同盟)을 맺고 만수산(萬壽山)에 은거(隱居)하였다.
이태조(李太祖)가 등극(登極)하여 전일의 우의(友誼)를 잊지 못하여 누차 승사(承使)를 보내어 조선조(朝鮮朝) 예조판서(禮曹判書)직을 권(勸)하였으나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忠節)로 이를 고사(固辭)하고 망국고신(亡國孤臣)의 애절(哀切)함을 다음과 같은 귀산사(歸山詞)의 시(詩)를 남기고 금천(金川)땅으로 옮겨 은거(隱居), 두문불사(杜門不仕)하고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延命)하면서 자손(子孫)에게 일러 조선조(朝鮮朝) 불사(不仕)를 유훈(遺勳)하였으며 1401년(太宗元年)에 70세로 졸(卒)하였다.
공(公)의 위패(位牌)는 의정부시(議政府市) 민락동 삼귀마을에 경기도지방문화재(京畿道地方文化財) 제42호로 지정(指定)된 사우(祠宇) 송산사(松山祠)와 양주(楊州) 추원단(追遠壇)에 배향(配享)되어 있다.
- 松隱公 歸山詞十韻 -
勛華世降兮여 牧野車還이로다.
我心不貳兮여 雲浮鄕關이로다.
我去何處兮여 去路漫漫이로다.
欲蹈東海兮여 更登西山이로다.
海闊山高兮여 風淸月寒이로다.
盧彼淨潔兮여 常掩松關이로다.
江鷗伴我兮여 山鶴識顔이로다.
身布首葦兮여 故國衣冠이로다.
溪流獨淸兮여 垂我釣閒이로다.
吾寧泯沒兮여 不傳人間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