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문화류씨시조(文化柳氏),류차달(柳車達)

작성일 : 2018-03-07 21:09

문화류씨의 연원(文化柳氏의 淵源)

우리나라에서 류씨(柳氏)로서 국사(國史)나 공가문헌(公家文獻)에 처음 등재된 것은 고려사(高麗史)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다. 이에 고려사와 동국여지승람에 의거, 문화류씨(文化柳氏)의 유래를 간략히 기술하겠다.「문화류씨 시조 류차달(柳車達)은 고려 태조 왕건 (太祖 王建)이 남방을 정벌할 때 수레를 많이 내어 군량을 공급함으로써, 그 공으로 대승(大丞)에 제수함과 아울러 삼한공신(三韓功臣)의 호를 내리었다.」하였으며, 그 아들 효금(孝金)이 일찍이 구월산(九月山)을 유람하다가 큰 범을 만나 입속에 걸려 있던 비녀를 빼주었는데 그 음덕으로 자손이 반드시 경상(卿相)이 되리라고 범이 현몽(現夢)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고, 또한 그 후손으로 문간공 공권(文簡公 公權) 이하 수대의 사행이 훌륭히 기록되어 있다.

문화류씨는 고려 · 조선 양조(兩朝)에 걸쳐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으니, 고려조에 소위 사세오공(四世五公)으로 일컫는 문간공 공권(文簡公 公權). 문정공 경(文正公 璥), 정신공 승(貞愼公 陸), 장경공 돈(章敬公 敬), 온정공 인기(溫靖公 仁琦)를 들 수 있고, 조선조에 들어서도 상신(相臣) 9인. 문형(文衡) 1인. 호당(湖堂) 5인, 청백리(淸白吏) 4인. 공신(功臣) 11인. 등단(登壇) 1인. 곤 수(關帥) 2인. 경연초선(經廷抄選) 1인. 문장(文章) 1인. 유현(儒賢) 10여인, 시호(論號) 28장 중 문시(文盆) 7장, 문과급제(文科及第) 고려 6인, 조선 134인. 도합 140인이고. 이밖에 무과(武科)와 생원 · 진사시(生員 . 進士試)에 급제한 분은 해아릴 수 없이 많으며, 또한 충의(忠義)와 효열(孝烈)로 정려(旌閭)와 복호(復戶)의 은전을 무릅쓴 분이 80여인에 이른다. 이렇듯 문화류씨는 고려와 조선 천여년 동안 명경(名卿)과 석학(碩學)이 계속 배출되어 국가와 휴척(休成)을 함께 한 명벌(名間)로 서 옛부터 삼한갑족(三韓甲族)으로 일컬어 왔다.

조선 숙종(肅宗) 때 우암 송시열(尤菴 宋時烈)은 「문화류씨의 규조(圭組: 官爵)의 성황함은 다른 씨족이 바래지 못하였다」하였으며 . 영조(英祖) 때 명신 홍봉한(洪鳳漢)은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서 「고려(高麗) 사인(士人)에 명망 있는 씨족(氏族)과 높은 재상(宰相) 으로 류(柳). 최(崔). 김(金). 이(李) 사성(四姓)이 귀종(貴種)이라」하여 고려 4대 명족 중에 류씨(柳氏)를 으뜸으로 꼽았으며. 정조(正祖) 때 학자 이긍익(李肯翊)은 연려실기술(燃蔡室記述)에서 「우리 나라 족보(族譜)의 효시(嚆矢)는 가정년간(嘉靖年間)에 간행된 문화류씨세 보(文化柳氏世譜)라」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명(明)나라 말엽 명사 우신행(于愼行)은 「동국(東國)의 류씨는 진(晋)나라 왕씨(王氏). 사씨(謝氏)와 당(唐)나라 최씨(崔氏), 노씨(盧氏)에 내리지 않는다」하였으니 국내외를 막론하고 류씨의 성망(聲望)이 얼마나 울연(蔚然)했던가 를 짐작할 수 있겠다.

문화류씨 의 관향인 문화(文化)고을은 고려 초 · 중기 에는 유주(儒州)로 일컬었고 감무(監務)를 두어 다스리던 지역인데 고종(高宗) 46년(1259) 위사공신 류 경(衛社功臣 柳 璥)의 고향이라 하여 문화(文化)로 개칭함과 동시에 현(縣)으로 승격시켜 현령(縣令)을 두었다. 조선조에 이르러서 그대로 문화현으로 존속하여 오다가 고종 32년(1895)에 군(郡)으로 되었더니, 경술(庚戌:1910) 한일합방(韓日合邦) 이후 신천군(信川郡)에 병합 문화면(文化面)이 되었다.

씨족통고(氏族通考)에 류씨(柳氏)의 관향(貫鄕)이 15 본이 전하는데 대종(大宗)인 문화(文化)를 비롯하여 진주(晋州), 전주(全州). 서산(瑞山), 고홍(高興), 풍산(豊山), 선산(善山), 영광(靈光) 등 8본은 현존하며, 육창(陸昌), 정주(貞州), 연안(延安), 배천(白川), 약목(若木), 부평(富平), 인동(仁同) 등 7본은 미약하여 자세히 알 수 없다.

다음 문화류씨의 세덕(世德)을 기술함에 있어 그 내용을 간략히 설명하겠다.

우리 문화류씨는 시조 대승공 이후 후손이 매우 번성하였을 뿐 아니라 실로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금번 전국 여러 타 성씨와 함께 등재될 이 책의 편집규정 및 지면 제약을 감안함은 물론 사의를 배제, 공정한 선별과 기술에 대종회의 명예를 걸고 노력하였다. 이에 참고문헌 및 등 재 범위를 간략히 이르자면, 참고문헌은 고려사. 조선왕조 실록. 국조방목. 한국학대백과사전. 한국사대사전. 한국 한자어사전 등 공가문헌(公家文獻)과 문화류씨 역대세보를 참고하였으며 . 등재범위는 이상 공가문헌에 수록된 인물과 유일(遺逸). 유현(儒賢) 및 실직당상관. 문과급제자로 한하였다. 이로써 고려 초부터 조선 말까지 238위를 엄선, 세대(世代) · 종지(宗支)의 순서로 등재하였음을 밝혀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