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찾기

조상찾기

HOME > 조상찾기

[나주임씨] 임복(林 復)

작성일 : 2018-08-20 10:35

자 희인(希仁) 호 풍암(楓巖) 1540년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1546년 증광 을과(增廣乙科)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承文院 正字)에 등용 되였는데 1547년 양재역(良才驛) 벽서(壁書)사건에 연루 되여 삭주(朔州)에 유배되었다. 1551년 순회세자(順懷世子)의 탄생으로 특사로 풀려나 고향 회진으로 돌아왔다.

선조(宣祖)초에 박사(博士)에 임명 되였으나 무고를 받아 취임하지 못하고 고향에서 은거하였다. 공은 시문(詩文)과 학행(學行)뿐만 아니라 무략(武略)에도 뛰어났다. 1574년에 왜()가 쟁단(爭端)을 만들자 변사(邊事) 십여책(十餘策)을 상소(上疏)하니 상()께서 비답(批答)을 내려 그중 전선(戰船 鐵甲船)의 제도(制度)를 가납(嘉納) 비변사령(備邊司令)과 각도수사(各道水使)로 하여금 그 설계에 따라 장조(裝造)하여 불시의 변에 대비할 것을 장려하였다. 과연 10여 년 후 1592년 임진년에 난이 일어나 통제사 이순신(統制使 李舜臣)등이 이것을 이용하여 대승(大勝)하였다.

병조판서(兵曹判書)가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