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3~1773 자가 사실(士實) 이고 호가 돈재(遯齋)이며, 북비(北扉)공으로 세상에 더 잘 알려져 있다. 영조 15년(1739) 27세에 근무과(勤武科)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에 제수되었다. 영조 26년(1750)에 대리서정(代理庶政)하던 사도세자(思棹世子)에 의하여 무신겸선전관(武臣兼宣傳官)으로 발탁되었다가 다시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로 옮겼다. 영조 38년(1762) 무겸(武兼)을 제수 받았는데, 이 해에 영조가 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이고자 마침 어가를 배종하여 현장에 있었던 공에게 큰 돌을 들어 뒤주 위에 놓게 하였으나, 공은 이를 거절하고 낙직귀향(落職歸鄕)한 후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벽상에 써붙이고 조석으로 풍송(諷誦)하며 두문불출하였다. 지금 공의 고택 서편 언덕에 면우(?宇) 곽종석(郭鍾錫)이 찬(撰)한 신도비가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