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27 10:59
1545(인종 元)~1597(선조 20). 자는 덕형(德馨), 호는 도곡(桃谷). 1592년 의병장 조헌(趙憲), 김천일(金千鎰)에게 군량과 병기(兵器) 운송지원. 1597년 부안에서 4월에 호벌치(胡伐峙)와 9월에 청등(靑燈)벌에서 왜적과 싸움. 청등(靑燈)벌 싸움에 의병 100명을 모집하고 결사적으로 싸워 30리 밖까지 물리쳤다.
1597. 9. 19 왜병(倭兵)은 증원부대(增員部隊)로 침공하여 왔으나 의병(義兵)은 증원부대(增員部隊)가 없는 가운데 병기(兵器)가 부족하고 중과부적으로 장렬한 최후를 마침. 부인 김영금(金寧金)도 최후를 마침. 그후 왜적의 행패(行悖)로 가장(家藏)하던 <행록문집 行錄文集>이 불타 없어짐. 고을 사람들이 애절한 싸움을 그려 수누비(隨淚碑, 일명 落㴃碑)를 세움. (부안군 상면 감교리) 당시 전적지 청등(靑燈)벌을 토왜지(討倭地)라 하였는데, 오늘날 변음(變音)되어 돼지터로 부르게 됨. 「호벌치(胡伐峙)는」「되재」또는 「됫치고개」라 부르고 있음(부안군 보안면 용서리). 1945년 광복후 사론(士論)에 의거 전적비(戰蹟碑)를 세움(지방기념물 30호). 고창군 성내면 옥제리(후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