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27 15:40
1874(고종11)~1910(경술). 자는 인국(仁局), 호는 강산(江山). 1895년 일본공사 삼포(三浦) 오누(梧樓)가 민비(閔妃)를 시해(弑害) 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왜놈을 축출하기 위하여 위국진충(爲國盡忠) 글자를 써서 품고 다님. 1907년 김태원(金泰元) 장군과 조경환(曹京煥) 등과 손잡고 항전의 선봉에 섰고, 그후 전해산(全海山) 부대에 들어가 큰 공을 세웠으나 부대 해체로 함평 영광 손불산을 무대로 항일 유격전을 수행하였으며, 김정태(金正泰), 최치도(催致道), 이판안(李判安), 박복남(朴福南) 등의 왜경 앞잡이를 의사(義士) 정인술(鄭寅述), 양창포(梁昌圃), 서성학(徐成學), 박치일(朴致一), 박장봉(朴章奉) 등과 함께 친일파를 소탕함.
대구형무소에서 위의 6의사(義士)와 함께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짐(36세). 독립유공자로 국민장 추서(追敍)됨. 독립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