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29 10:02
1579(선조 12)~1644(인조 22) 자(字)는 자정(子瀞), 시호(諡號)는 충간(忠簡), 감찰(監察) 익신(翊臣)의 아들. 1609년(광해군 1)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성균관에 들어가 재사(才士)로서 이름났으나 대북(大北)의 난정(亂政)으로 낙향, 1623년 인조 반정으로 순릉 참봉(順陵參奉)이 되었다.
이듬해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갑과(甲科)로 급제하여 풍저창 직장(豊儲創直長)을 거쳐 주서(注書)․전적(典籍) 등을 역임하고 호조․병조의 좌랑(佐郞)을 지냈다.
1628년(인조 6) 정언(正言), 1632년 지평(持平)을 지내고, 1636년 통신사(通信使)로 일본에 갔다가 이듬해 귀국, 좌승지(左承旨)를 거쳐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으로 어사가 되어 삼남(三南)의 수군(水軍)을 순찰한 후 형조 참판이 되어 특진관(特進官)을 겸했다.
충주 목사(忠州牧使)․안동 부사(安東府使)를 거쳐 1642년 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도승지(都承旨)를 지내고, 이듬해 좌부빈객(左副賓客)으로 김 육(金 堉)과 함께 심양(瀋陽)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昭顯世子)가 환국(還國)하게 되 어 이들을 수행하기 위해 청나라에 갔다가 그곳에서 병사했다. 1811년(순조 11) 좌의정(左議政)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