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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천임씨] 임유후(任有後)

작성일 : 2018-08-29 10:04

1601(선조 34)~1673(현종 14) 자(字)는 효백(孝伯), 호(號)는 만휴당(萬休堂)․휴와(休窩), 시호(詩號)는 정희(貞僖), 교리(敎理) 수정(守正)의 아들. 임숙영(任叔英)의 문인. 1624년(인조 2) 생원(生員)․진사(進士)․양시(兩試)에 합격, 1626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승문원(承文院)에 등용되었다가 가주서(假主書)가 되고, 1628년 동생 지후(之後)가 반란을 꾀하다 발각되어 숙부인 판서(判書) 취정(就正)과 그 두 아들이 죽음을 당하자 사퇴했다.

효종(孝宗) 때 다시 기용되어 영해(寧海)․강릉(江陵) 등의 부사(府使)를 거쳐 종성 부사(鐘城府使)로 나가 여진족(女眞族)에 대한 방비를 하는 한편 백성들에게 유학(儒學)을 가르쳐 학풍을 진작했다.

1660년(현종 1) 예조 참판(禮曹參判)을 거쳐 담양 부사(潭陽府使)로 전임하여 선정(善政)을 베풀고, 승지(承旨)를 거쳐 1670년(현종 11) 공조와 병조의 참판(參判)을 역임, 이어 도승지(都承旨)․경기도관찰사(京畿道觀察使)․호조 참판(戶曹參判)․경주부윤(慶州府尹) 등을 지내고, 은퇴할 때 계산(溪山)에 들어가 정사(精舍)를 짓고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며「목동가(牧童歌)」를 지었다고 전한다. 죽은 뒤 이조 판서(吏曹判書)에 추중(追贈), 울진(蔚珍)의 고산서원(孤山書院)에 제향(祭享)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