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29 14:43
1471(성종 2)~1531년(중종 26) 字는 정지(貞之), 호(號)는 소요정(逍遙亭), 시호(諡號)는 문정(文靖). 구령(龜齡)의 증손, 도호부사 응(膺)의 3子. 1495년(연산군 1) 생원(生員)이 되고, 1502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이듬해 수찬(修撰)이 되었고, 1506년 중종반정(中宗反正)에 참여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 3등으로 화천군(花川君)에 봉해졌다.
이듬해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明)나라에 다녀오고, 1509년 성천부사(成川府使), 1518년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이 되었다.
이듬해 형조판서(刑曹判書)에 임명되었으나 신진사류(新進士類)인 조광조(趙光祖) 일파의 탄핵으로 파직, 이어 정국공신(靖國功臣)도 삭탈 당하자 이에 훈구파(勳舊派) 남곤(南袞) ‧ 홍경주(洪景舟) 등과 함께 기묘사화(己卯士禍)를 일으켜 사류들을 숙청하였다.
1527년 우의정(右議政)을 거쳐 좌의정(左議政)에 올랐다가 이해 복성군(福城君)의 옥사(獄事)가 일어나자 김안로(金安老)의 탄핵으로 삭직(削職)되고 강서(江西)에 유배,「종루의 익명서(匿名書) 사건을 아들 사순이 하였다」라는 모함에 대해「아비가 몰랐을리 없다」라는 누명을 덧씌워 사사(賜死)되었다.
그 후 사헌부는 김안로가 정과 사순부자를 제거하기 위하여 채무택에게 사주하여꾸민 휴계라고 사건의 진상을 밝혔다.
산소는 서울 강서구 방화동 개화산에 있으며 서울시 지정 문화재 제 77호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