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29 14:48
1490(성종 21)~1555년(명종 10) 號는 자온(子溫). 좌의정 정(貞)의 長子, 만포첨사 사손(思遜)의 兄. 1513년(중종 8) 진사시에 합격. 1521년 전연사별좌(典涓司別座), 1523년 의금부경력(義禁府經歷)으로 사재주부(司宰主簿), 장예원사평(掌隸院司評) ‧ 장흥고령(長興庫令)과 공조(工曹) ‧ 호조정랑(戶曹正郞), 중종 26년 예빈시첨정(禮賓寺僉正)으로 승서되었으나 부친(좌의정 貞)이 김안로(金安老)의 무고(誣告)로 사사(賜死)되는 경지에 이르러, 연계옥사로 몇 번이나 사경(死境)에 이르렀으나 김안로의 兄 김안정(金安鼎)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했다. 중종 32년 김안로가 복주(伏誅)된 후, 온양(溫陽) ‧ 가산군수(嘉山군수)를 거쳐 대구부사(大邱府使)로 부임되어, 선정을 베풀자 대구시민들이 대궐에 진정하여 임기를 1년 연장하기도 하였다.
그 후 내자시정(內資寺正)으로 재임 중, 1555년(명종 10) 3월 20일 김안로의 모해(謀害)를 받아 억울하게 사사된 선친(貞)의 직첩(職牒)을 돌려줄 것을 上言하여 허락을 받았다. 이어서 원주목사(原州牧使)에 발탁되었으나 다음 해, 조카 수경(守慶)이 강원(江原)감사로 나가게 되어 부임하지 못하고 종친부전부(宗親府典簿)로 재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