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찾기

조상찾기

HOME > 조상찾기

[풍산심씨] 심사손(沈思遜)

작성일 : 2018-08-30 10:14

1493(성종 24)~1528년(중종 23). 字는 양경(讓卿). 좌의정 정(貞)의 次子. 1513년(중종 8) 사마시(司馬試)를 합격하고, 1517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 예문관(藝文館)에 등용되고, 1523년 비변사낭관(備邊司郎官)으로 서북면(西北面)의 야인 정벌에 공을 세웠다.

예조좌랑(禮曹佐郞) 정언(正言) 교리(敎理) 병조정랑(兵曹正郞) 등을 거쳐,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 응교(應敎)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를 역임, 1525년 경상우도어사(慶尙右道御使), 홍문관전한(弘文館典翰)을 거쳐 직제학(直提學)에 올랐다.

1528년(중종 20) 다시 서북 변경에서 야인(野人)들의 준동이 심해지자, 왕(중종)은 문무를 겸비하고 신망이 두터운 사손(思遜)을 특명으로 당상관(堂上官)에 특진시켜 만포진첨절제사(滿浦鎭僉節制使)로 임명하였다. 임지(任地)에서 위엄과 혜택으로 다스려 야인(野人)과 兵士가 모두 잘 따라 평정이 되어 가던 중, 1528년(중종 23) 1월 병영(兵營)에 땔감 채취를 위해 장졸(將卒)을 인솔하여 압록강을 건너가 작업 중에, 오랑캐의 급습을 받아 화(禍)를 당했다. 영상례 겸 행절충장군만포첨사(領相例兼折衝將軍滿浦僉使)에 추증 되었다. 강서구 방화동 개화산에 있는 산소와, 영의정 홍섬(洪暹)이 찬(撰)한 신도비, 사당이 서울시 지정 문화재 제 77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