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2-09 13:59 수정일 : 2019-06-30 17:05
1693(숙종 19)- 1773(영조 49). 자는 경보(景寶), 호는 경담(鏡潭), 파조 국암공의 후손, 중형조참판(贈刑曹參判) 의엽(義燁)의 아들. 1711년(숙종 17)에 생원이 되고,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학문이 뛰어났으나 선친의 훈시에 따라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유림(儒林)의 사범이 되니 배우러 오는 자가 많았다. 1762(영조 38)에 장헌세자(莊獻世子)가 돌아가자, 성균관에 나가 유생들과 함께 무고한 죄로 억울한 죽음이었다는 상소를 올렸다. 1772년(영조 48) 80세로 수직(壽職)으로 첨지중추부사, 이듬해에 81세로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가 되었다.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이 곡장(哭狀)을 지었고, 성재(性齋) 허전(許傳)이 묘지(墓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