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2-14 14:28
1333(충숙왕 복위 2)~1394(태조 3) 진주 목사(晋州牧使) 안(安)의 아들, 평장사(平章事) 안 우(安 祐)의 사위. 안 우의 휘하에서 여러번 전공을 세워 별장(別將)이 되고, 여러 벼슬을 거쳐 공부 시랑(工部侍郞)이 되었다. 공민왕이 즉위하자 종부령(宗簿令)을 지내고, 1363년(공민왕 12) 앞서 흥건적을 격퇴한 공으로 1등공신에 올랐다.
1374년(공민왕 23) 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가 되어 판삼사사(判三司事) 최 영(崔 塋)의 휘하에서 목호(牧胡)의 난이 일어난 제주(濟州)를 정벌, 1380년(우왕 6) 예의 판서(禮義判書)로서 전라도 병마사(全羅道兵馬使)가 되었다. 1382년 밀직부사(密直副使)로서 영해군(寧海郡)에 침입한 왜구(倭寇)를 격퇴한 후 전주 부원수(全州副元帥)․안동 원수(安東元帥) 등으로 여러 차례 왜구를 격퇴했다.
1388년(우왕 14) 요동정벌(遼東征伐) 때 부원수(副元帥)로서 이성계(李成桂)의 우군(右軍)에 속하여 종군, 위화도 회군(威化島回軍)에 가담하여 1등공신에 오르고, 양광․경상․전라도 도체찰사(都體察使)가 되어 남원(南原)에서 왜구를 무찌르고 돌아와 서북면 도절제사(西北面都節制使)․평양윤(平壤尹)이 되었다.
1389년(공양왕 1) 밀직사(密直使)로서 천추사(千秋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391년(공양왕 3)에 전라도 절제사(全羅道節制使)가 되었다. 1392년 조선 개국 후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