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2-15 14:23
1454(단종 2)~1504(연산군 10) 자(字)는 연연(淵淵), 호(號)는 금남(錦南),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문인. 1482년(성종 13) 친시문과(親試文科)에 급제, 교서관 저작(校書館著作)․박사(博士)등을 거쳐 수찬(修撰)을 역임하고, 1486년(성종 17)문과중시(文科重試)에 급제하여 호당(湖當)에 선임되어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한 뒤 교리(校理)로「동국통감(東國通鑑)」․「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등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487년 제주추쇄경차관(濟州推刷敬差官)으로 부임하였다가 이듬해 부친상(父親喪)을 당하여 돌아오던 도중 풍랑을 만나 중국 절강성(浙江省) 영파부(寧波府) 연안에 표착(漂着)하여 반년만에 귀국하였다.
그 후 왕명(王命)으로「표해록(標海錄)」을 저술(著述)하여 중국 연안의 해로(海路)․기후․산천․도로․관부(官府)․풍속․민요 등을 소개하였으며, 특히 수차(水車) 제작과 이용법을 배워와서 충청도 지방의 한발(旱魃)때 이를 사용케하여 많은 도움을 주었다. 1492년 지평(持平)․사간(司諫)등을 역임하였고 1497년(연산군 3) 성절사(聖節使)의 질정관(質正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무오사화 때김종직의 문인들로 붕당(朋黨)을 조직하여 국정을 비방하였다는 죄로 단천(端川)에 유배(流配)되어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에 참형(斬刑)을 당하였다. 후에 신원(伸寃)되어 승정원 도승지(承政院都承 旨)에 추증(追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