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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장씨] 장보지(張輔之)

작성일 : 2019-07-23 15:14

호(號)는 달산(達山), 공민왕(恭愍王) 때 문과에 급제한 후 순성좌리공신(純城佐理功臣)에 책록되었고, 봉익대부(奉翊大夫)에 올라 이조(吏曹) 판서(判書)를 역임하였다. 그는 당시의 어지러운 정국(政局)을 바로 잡으려고 수 차례 주청(奏請) 하였으나 권세가(權勢家)의 희롱으로 묵살되었다. 공민왕(恭愍王) 때 야수(野獸)가 성(城)안으로 들어오고 까마귀 떼가 궁중(宮中)으로 모여들며 샘이 마르고 물고기가 싸우는 것을 보고, 국가(國家)에 변란(變亂)이 있을 것을 예측하고 도읍(都邑)을 옮길 것을 주장했으나 도당(都堂)의 압력에 의해 뜻을 이루지 못하니 벼슬에서 물러나 순천(順天)으로 낙향하였다. 조선 개국(朝鮮開國) 후 태조(太祖)는 수 차례 벼슬에 오를 것을 권유하였으나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하며 충절(忠節)을 지키기 위해 건달산(建達山)에 들어가 은거생활을 하니 그의 충절에 감탄하여 지금도 그 터를 장판서(張判書) 은신처(隱身處)라고 한다. 비안(比安)의 백천서원(白川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