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字)는 경하(景遐)이고 호(號)는 사미헌(士未軒)이며 장굉(張浤)의 장자(長子)로 백부(伯父) 장관에게 출계(出系)했다. 조부에게 수학(修學)하여 은일(隱逸)로 선공감(繕工監) 감역(監役), 장원서(掌苑署) 별제(別提), 경상도(慶尙道) 도사(都事) 등을 제수(除授)하였으나 모두 불사(不仕)하고 오직 학문(學文)과 후진(後進) 교육(敎育)에만 전념(專念)하였다. 고종(高宗) 27년 서기 1890년 용리서당(用里書堂)(칠곡군 기산면 각산리)을 세워 많은 후진(後進)을 교육(敎育)하여 문인(門人)이 500여명을 배출(輩出)하여 오늘날까지 그 학맥(學脈)과 사상(思想)이 면면(綿綿)히 이어오고 있다. 고종 31년 서기 1894년 부호군(副護軍)과 가선대부(嘉善大夫)를 승서(陞敍)하였으나 모두 불사(不仕)했다. 효행(孝行)이 지극(至極)하여 당대(當代) 영남(嶺南) 유종(儒宗)으로 추존(推尊)하였다. 저서(著書)로는 역학(易學)계몽(啓蒙), 숙흥야매잠집설(夙興夜寐箴集說), 동몽훈(童蒙訓)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