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號)는 운석(雲石)이고 개(㝏)옹(翁) 장봉한(張鳳翰)의 후손(後孫)이다. 수원고등농림학교(水原高等農林學校:서울대 농생대 전신)를 졸업(卒業)하고 도미(渡美)하여 만하탄대학 문과를 졸업하고 만하탄 시튼홀 포덤 등 각 대학(大學)애서 박사학위(博士學位)를 받고 귀국(歸國)하여 교육계(敎育界)와 천주교(天主敎)에서 활약했다. 해방 후 정계(政界)에 진출(進出)하여 민주의원 입법위원을 거쳐 제한국회의원에 당선되고 UN총회 한국수석대표, 바디칸 한국 특사 초대주미한국대사. 국무총리를 거쳐 자유당(自由黨) 이승만(李承晩) 정권(政權) 시(時) 민주당(民主黨)을 창당(創黨)하고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신익희(申翼熙)의 런닝메이트로 부통령(副統領)에 출마해 선거도중 신익희는 급서(急逝)하고 부통령(副統領)에 당선(當選)되었으나 이승만(李承晩) 정권(政權)의 부통령 소외(疏外)로 임기동안 하는 일 없는 부통령으로 임기만 체웠다. 1960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조병옥(趙炳玉)의 런닝메이트로 다시 부통령(副統領)에 출마(出馬)했으나 자유당(自由黨)의 3.15부정선거(不正選擧)로 부통령(副統領) 직(職)을 사임(辭任)했다. 4.19혁명(革命) 후 제2공화국에서 내각책임제(內閣責任制) 하의 국무총리(國務總理)로 선출(選出)되어 경제개발(經濟開發)을 위한 장기계획(長期計劃) 등을 구상(構想)해 실천(實踐)하려는 순간 1961년 5월 16일 박정희(朴正熙)가 주도(主導)한 군사(軍事) 혁명(革命)으로 실각(失脚)하고 군사혁명(軍事革命) 정부(政府)에게 정권(政權)을 이양(移讓)하였다. 장면정부(張勉政府)는 자유당(自由黨)과 공화당(共和黨)의 독재정권(獨裁政權) 사이에 민주주의(民主主義)를 꽃 피우려는 그의 구상(構想)이 무지(無知)한 한국(韓國)국민(國民)의 사대주의적(事大主義的) 기질(氣質)로 유연(柔軟)한 자에게는 강하고 경직된 자에게는 약한 면모(面貌)를 유감(遺憾)없이 발휘(發揮)해 데모 천국(天國)으로 사회혼란(社會混亂)이라는 빌미를 정치(政治) 군인(軍人)에게 제공(提供)해 단군(檀君)이래(以來) 처음 얻은 민주주의(民主主義) 제도(制度)를 스스로 무덤으로 가게해 역사(歷史)의 발전(發展)을 30년 간 뒷걸음치게 한 책임(責任)이 국민(國民)이냐 장면(張勉)이냐의 역사(歷史)의 심판(審判)을 남기게 한 아쉬운 정치 지도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