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졸갑년 미상 시호 위절(威節) 경호공 휘흥(敬胡公 諱興)의 손자이며 부윤공 휘주생(府尹公 諱稠生)의 아들인데 일찍이 무과(武科)에 급제 포도부장(捕盜部長)을 거처 1482년 전주판관(全州判官)을 역임 1485년 훈련원 판관(訓練院 判官)으로 1486년 승진되어 통정대부 경원도호부사(通政大夫 慶源都護府使)가 되었다. 이후 전라우도 수군절제사(全羅右道 水軍節制使)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온성부사(穩城府使), 회녕부사(會寧府使) 등을 역임한후 한때 가선대부(嘉善大夫)로서 한직(閒職)에 있었다. 1499년 한직으로서 상호군(上護軍)으로만 있었는데 병조(兵曹)에서 순변사(巡邊使)로 추천 조전절제사(助戰節制使)가 되었고 1500년에는 해랑도 초무사(海浪島 招撫使)가 되어 해랑도를 평정하고 왔음으로 인해 한성부 좌윤(漢城府 左尹) 이 되었고 1505년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를 다녀와서 1506년 한성부 판윤(漢城府 判尹)이 되었다. 1508년 포도대장(捕盜大將)에 임명되었으며 1509년에는 병조참판(兵曹叅判)이 되었고 같은 해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 졸(卒)하였다. 공(公)은 법을 집행함에 있어서는 공정무사(公正無私) 청렴결백(淸廉潔白) 엄핵조율(嚴覈照律)의 강직한 인품을 지닌 청백이(淸白吏)였기에 중종(中宗)이 시호를 위절(威節)이라 내리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