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1-1824) : 호(號)는 화산(華山) 사마시(司馬試)에 3등으로 입격(入格)하여 세속적(世俗的)인 부귀(富貴)영달(榮達)에 뜻이 없어 오로지 성리학 연구에 전념(專念)하여 평생(平生)을 바쳤음, 공주지역 향약(鄕約)을 실천(實踐)한 연유(緣由)로 유림(儒林)이 조정(朝廷)에 상소(上疏)해 정조(正祖)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그 후 유림과 후손의 협력으로 영당(影堂)을 모체(母體)로 하여 화산사(華山祀)를 건립(建立)하고 유림(儒林)에서 봉사(奉祀)하며 현재 진사(進士)교지(敎旨)와 화(華)산(山)집(集) 향약(鄕約)절목(節目) 둥이 보관되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