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8-23 15:31
1550(명종 5)~1624(인조 2) 자(字)는 응상(應祥), 호(號)는 오재(梧齎), 통훈대부(通訓大夫) 여 즙(汝楫)의 아들. 1566년(명종 21)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황해도 병마수군 절도사(黃海道兵馬水軍節度使)가 되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의병(義兵)을 모집하여 남양 고을을 방어하게 되었다.
이 때에 종형되는 찰방(察訪) 곤(鵾) 역시 남양에서 군사 수백명을 거느리고 와서 합세하여 고원포(古院捕)까지 이른 적병을 계교로 유인 포위하여 화살과 돌로 섬멸하였다. 뒤에 도원수(都元帥) 권 율(權慄)의 휘하에서 종형, 아들 호(皞)와 함께 군량미를 운송하여 행주산성(幸州山城)까지 전하였다.
이러한 공으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고, 다시 1597년 왜군들이 재침해 왔을 때 북행하는 임금의 어가를 호종(扈從)하여 호성원종공신(扈聖武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