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9-04 11:20
1678(숙종 4)~1752(영조 28) 자(字)는 여일(汝逸), 호(號)는 농포자(農圃子), 영의정 인지(麟趾)의 후손. 이 익(李 瀷)의 문인. 실학파의 지리학자로서 오랫동안 전국을 답사(踏査), 과학적인 백리척(百里尺)을 이용하여「팔도도(八道圖)」를 제작, 역대 국경의 변천의 역사 지리학적인 검토를 기도했고, 군현(郡縣)의 연혁, 산천도리(山川道里), 관방(關防)의 성곽, 해로(海路), 북간도 강계(北間島彊界), 궁실(宮室) 등에 대한 역사적 변천을 기술했다.
특히 산천의 기사(記事)는 자연지리학적 관점에서 논술하여 정치적 관점을 벗어난 근대적 안목을 보여 주었으며 토지개혁에서 부터 병사(兵事)․산업(産業)․재정(財 政)․의약(醫藥) 등에 이르기까지 일상생활의 전반을 실용적인 이용도에서 연구했다. 실학파 가운데 이익을 종조(宗祖)로 하는 경세치용학파(經世致用學派)가 그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었다. 7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병약하여 과거를 단념, 집에서 학문연구에 일생을 보냈으며, 만년에 아들 항령(恒齡)이 왕을배종한 공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