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0년(영조 36) 자(字)는 경식(敬植)이고 호(號)는 도암(道庵)이다. 말(沫)의 7세손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을 거쳐 운총(雲寵) 만호(萬戶), 황해도(黃海道) 우후(虞侯)로 1811년(순조 11) 홍경래(洪景來)의 난(亂)에 청북소모장(淸北召募將)으로 군사를 모집하고 이해우(李海遇) 휘하(麾下)의 병력 200명을 인솔 정주(定州)에 이르러 의병장(義兵將) 현인복과 함께 선봉장(先鋒將)에 승진(陞進)되어 정주성 남문을 공격(攻擊)했고 신도진(薪島鎭) 수군절제사(水軍節制使) 겸 방어(防禦將)에 임명되어 계속 공격전(攻擊戰)을 수행하다가 전사(戰死)하였다. 삼도수군톤제사에 증직되고 순조의 어명으로 정주 표절서원(表節書院)에 제향(祭享)되고 정란1등공신에 책록(策錄)되고 1854년(철종 5)에 병조(兵曹) 판서(判書)에 추증(追贈)되고 충양(忠襄)이란 시호(諡號)도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