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號)는 서산(西山). 1374년(공민왕 23) 진사(進士)가 되고, 이해 춘장문과(春場文科)에 급제(及第), 전교(典校) 시랑(侍郞)에 기용되고, 1383년(우왕 9) 사헌부(司憲府) 규정(糾正)을 거쳐 1385년(우왕 11) 사재시(司宰寺) 승(承)이 되었다. 1387년(우왕 13) 아버지 상을 당했는데 기복(起復)하여 통례문(通禮門) 사인(舍人)이 되고 이듬해 사설서(司設署) 영(令), 이어 전법(典法) 좌랑(佐郞)으로 금어대(金魚袋)를 받고 이조(吏曹) 좌랑(佐郞)이 되었다. 1390년(공양왕 1)에 흥복도감(興福都監) 판관(判官)으로 자금어대(紫金魚袋)를 받아 예조(禮曹) 정랑(正郞) 승진되었다. 그후 병조(兵曹) 정랑(正郞)으로 전임되고 전교(典校) 부령(副令)․지임천군사(知林川郡事)등을 역임했다. 조선 개국(朝鮮開國) 후 판서운관사(判書雲觀事)에 제수(除授)되었으나 불취(不就)했고, 태종(太宗)이 진사에 동방(同榜)한 정의로 순흥(順興) 부사(府使)․공조(工曹) 전서(典書)․광주(光州) 목사(牧使) 등에 제수(除授)되었으나 역시 나아가지 아니하고 서산지절(西山之節)을 본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