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字)는 경빈(景賓). 1561년(명종 16)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귀후서(歸厚署) 별좌(別坐)에 천거되었다. 그후 형조(刑曹) 좌랑(佐郞)을 거쳐 과천(果川) 현감(縣監)으로 전출되어 임기를 마치고 돌아와서 호조(戶曹) 좌랑(佐郞)이 되었다. 이어 영평(永平) 현령(縣令)․양천(陽川) 현감(縣監)을 지내면서 치적이 있어 한성(漢城) 판관(判官)에 승진되었다. 그후 삼화(三和) 현령(縣令)으로 재직(在職)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란의 대비책을 준비(準備)하고 왕이 의주로 안전하게 난을 피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고 노변의 전재민을 구제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워 품계를 높여 중책을 맡기려고 했는데 불행히 세상을 떠났다. 장악원(掌樂院) 정(正)에 추증(追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