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9-09 11:10
1553(명종 8)~1622(광해군 14) 자(字)는 백익(伯益), 감찰(監察) 기(璣)의 아들. 1582년(선조 15) 진사(進士)가 되고, 1588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검열(檢閱)․봉교(奉敎)를 거쳐 이듬해 병조 좌랑(兵曹佐郞)을 역임, 1599년 평양부 서윤(平壤府庶尹)이 되었다. 1601년 지평(持平)․집의(執義)․사간(司諫)․사예(司藝)를 역임, 다음해 북도 진휼어사(北道賑恤御使)로 나가 기민(飢民)을 구제하고 사성(司成)이 되었다.
1603년 사도시정(司導寺正)․지제교(知製敎)가 되었고, 앞서 임진 왜란으로 3개처의 사고(史庫)에 보관된 실록(實錄)이 모두 소실되고 전주사고(全州史庫)에만 보존되어 있으므로 이를 다시 간행하고자 실록청(實錄廳)을 개설할 때, 편수관(編修官)이 되어 실록의 재간행 사업에 참여했다.
1612년(광해군 4) 성주 목사(星州牧師)가 되었으나 이때 관내에 권신 정인홍(鄭仁弘)의 세력을 믿고 횡포를 자행하는 토호(土豪)를 엄벌했다가 파직당했다. 1615년 분승지(分承旨)로 등용되고, 1617년 사과(司果)를 지낸 뒤 대북파(大北派)의 전횡(專橫)이 심해지자 사직하 고 원주(原州)에 은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