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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양조씨] 조익(趙 翼)

작성일 : 2019-09-09 11:14

1579(선조 12)1655(효종 6) 자(字)는 비경(飛卿), 호(號)는 포저(浦渚), 시호(諡號)는 문효(文孝).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영중(瑩中)의 아들. 장현광(張顯光)․윤근수(尹根壽)의 문인. 음보(蔭補)로 정포 만호(井浦萬戶)가 되고, 1598년(선조 31) 서로양선 압운관(西路粮船押運官)으로 미곡 23만석을 무사히 운반, 표리(表裏)를 하사받았다.

1602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정자(正字)․검열(檢閱)을 지내고, 1609(광해군 1) 병조 좌랑(兵曹佐郞)을 거쳐 1611년 수찬(修撰)에 재직중 정인홍(鄭仁弘) 등이 이언적(李彦迪)․이 황(李 滉)의 문묘 종사(文廟從祀)를 반대하자 이를 탄핵했다가 고산도 찰방(高山道察訪)으로 좌천, 이듬해 웅천 현감(熊川縣監)이 되었으나 사직하고 은퇴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다시 기용되어 이조 좌랑(吏曹佐郞)이 되고, 사가독서(賜暇讀書)한 뒤 이듬해 사인(舍人)․응교(應敎)․직제학(直提學)․동부승지(同副承旨)를 지냈다. 1625(인조 3) 부호군(副護軍)․형조 참의(刑曹參議)가 되고,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예조 판서(禮曹判書)로서 도망한 죄로 1639년 처벌당했다가 뒤에 등용되어 1643년 원손 보양관(元孫輔養官)이 되었다.

이조와 예조의 판서(判書)․대사헌(大司憲)을 거쳐 1648년 좌참찬(左參贊)에 승진, 이듬해 효종(孝宗)이 즉위하자 우의정(右議政)이 되고 인조(仁祖)의 행장찬집청 찬집관(行狀纂輯廳纂輯官)을 겸한 뒤 좌의정(左議政)에 올랐다. 이해 이 이(李 珥)․성 혼(成 渾)의 문묘종사 (文廟從祀)를 상소했다가 허락하지 않자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가 학문 연구에 정진했다.

성리학(性理學)의 대가로서 예학(禮學)에 밝았으며, 음률(音律)․병법(兵法)․복서(卜筮)에도 능했고, 특히 김 육(金 堉)이 제창한 대동법(大同法)의 시행을 적극 주장했으며 문장에 뛰어났다. 개성(開城) 숭양서원(崧陽書院)․광주(廣州)의 명고서원(明皐書院)․신창(新昌)의 도산서원(道山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